비가 올 것 같았다.
날씨 앱도 그렇다고 했고, 창밖의 하늘도 그렇다고 했다.
무엇보다 내 무릎이 그랬다.
무릎은 비가 오기 전이면 꼭 한마디씩 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거 없다고 했지만 나는 안다.
비 오기 전의 무릎은 일기예보보다 정확할 때가 있다.
그래서 우산을 챙겨 나왔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비는 오지 않았다.
늘 그렇다. 내가 우산을 챙기면 비는 안 오고, 안 챙기면 온다.
자연은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
오후 네 시쯤이었다.
특별히 할 일은 없었지만 집에 있기 싫어서 밖으로 나왔다.
집에 있는 것이 싫은 건 아니다.
그냥 너무 오래 있으면 내가 가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소파와 내가 같은 종족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편의점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날씨가 애매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좋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어떤 사람은 급하게 걸었고, 어떤 사람은 천천히 걸었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누군가는 통화를 했다.
한 커플은 싸우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남자는 앞서 걷고 있었고 여자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경험상 저건 대체로 싸운 상태다.
편의점 문이 열릴 때마다 딩동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문득 삶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들어오고 누군가는 나간다.
들어오는 사람은 음료수를 사고 나가는 사람은 삼각김밥을 산다. 어떤 사람은 맥주를 사고 어떤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산다.
목적은 다 다른데 결국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자기 갈 길을 간다.
편의점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잠시 머무르는 것.
그게 전부인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다가 문득 웃음이 났다.
나는 지금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무슨 철학자인 척을 하고 있는 걸까.
옆을 보니 누군가 먹다 버린 캔커피가 있었다.
철학은 무슨.
세상은 캔커피 하나에도 쉽게 패배한다.
그래도 괜찮았다.
바람이 불었다.
멀리 가로수 잎이 흔들렸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비가 올 것 같았던 하루.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쁘지 않았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좋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기분이 괜찮은 날.
행복하다고 하기엔 좀 부족하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하기엔 미안한 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보았다.
결국 비는 내리지 않았다.
나는 접지도 않은 우산을 어깨에 걸치고 웃었다.
뭐 어쩌겠는가.
안 온 비도 나름의 역할은 했을 것이다.
적어도 오늘은 나를 집 밖으로 끌어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