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현재의 나를 과거가 만든 결과라고 생각한다.
가난했던 사람은 가난한 환경 때문에,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 환경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은 상처 때문에, 성공한 사람은 노력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것은 사실이다.
나는 부모를 선택하지 못했고, 태어난 나라를 선택하지 못했으며, 어린 시절 만난 사람들 또한 선택하지 못했다.
지금의 나를 이루는 수많은 요소들은 이미 과거에 결정되어 있었다.
이 점에서 현재의 나는 분명 과거의 총합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
만약 현재의 내가 과거의 총합이라면 변화는 불가능해야 한다.
상처받은 사람은 영원히 상처받은 사람으로 남아야 하고, 겁이 많은 사람은 평생 겁쟁이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실패를 딛고 일어나고, 누군가는 증오를 용서로 바꾸고, 누군가는 절망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과거를 해석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어떤 사람은 불행의 원인으로 삼고, 어떤 사람은 성장의 계기로 삼는다.
그러므로 현재의 나는 단순한 과거의 결과물이 아니다.
나는 과거를 해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억이다.
사람들은 과거를 그대로 기억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기억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구성한다.
어릴 적 실패는 어느 날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한때의 사랑은 시간이 지나 감사한 추억이 되기도 한다.
과거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과거가 현재의 나에게 갖는 의미는 계속 변한다.
따라서 현재의 나는 과거 사건들의 총합이 아니라 그 사건들에 부여한 의미들의 총합에 더 가깝다.
그렇다고 과거를 무시할 수도 없다.
나는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상처는 흔적을 남기고, 배움은 습관을 남기며, 경험은 판단의 기준을 남긴다.
지금의 나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과거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나 과거는 나를 설명할 뿐,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이 아니다.
나는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대화하며 만들어가는 존재이다.
과거는 나의 재료다.
그러나 그 재료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는 여전히 현재의 나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인간은 과거의 산물이면서도, 동시에 과거를 넘어설 수 있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