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면 결국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범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뉴스를 즐겨 보는 편도 아니고, 잔인한 사건을 찾아보는 취미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살다 보면 그런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
주차 문제로 인한 폭행.
온라인에서 시작된 혐오와 조롱.
수십 년 동안 가족처럼 지내던 지인을 말다툼 끝에 살해한 사건.
평생 사랑한다고 말했던 부부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사건.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극.
뉴스를 보다 보면 이런 일들이 생각보다 너무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럴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왜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정말 그날의 말다툼 때문이었을까.
정말 층간소음 때문이었을까.
정말 주차 문제 때문이었을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범죄는 범죄입니다.
누군가를 해치는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그런 사건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 안에는 오랫동안 쌓인 분노가 있었을 것이고.
오랫동안 쌓인 모멸감이 있었을 것이고.
오랫동안 쌓인 외로움과 좌절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저는 점점 인간이라는 존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 사람은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는가.
왜 사람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가.
왜 사람은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가.
그리고 왜 사람은 어느 순간 선을 넘게 되는가.
『안전살인연구회』는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살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범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제가 관심을 가진 것은 범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보다.
살인 직전의 사람.
선을 넘기 직전의 사람.
분노와 후회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이 더 궁금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인간이 생각보다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이유로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돈 때문에 힘들고.
누군가는 직장 때문에 힘들고.
누군가는 가족 때문에 힘들고.
누군가는 인간관계 때문에 힘듭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출근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편의점에 들르고.
식당에 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유를 품고 살아가는 작은 시한폭탄들인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그 폭탄을 터뜨리는 것이 거창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무시하는 말 한마디.
비웃는 표정 하나.
사소한 조롱.
당연하다는 듯 내뱉는 무례함.
별것 아닌 것처럼 지나가는 모멸감.
어쩌면 그런 것들이 마지막 한 방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생각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서로를 조금 더 존중할 수 없는 걸까.
왜 사람들은 서로를 조금 더 배려할 수 없는 걸까.
왜 사람들은 자기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 걸까.
처음에는 그 이유를 세상 밖에서 찾았습니다.
사회가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육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치가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세대가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물론 사회의 문제는 존재합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갑니다.
비교 속에서 살아갑니다.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씁니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와 분노는 쌓여 갑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도 쉽습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는가.
나는 누군가를 무시하지 않았는가.
나는 누군가를 상처 입히지 않았는가.
결국 저는 점점 바깥보다 안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철학자들의 책을 읽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사건들을 찾아보며 생각했습니다.
니체는 인간 안에 심연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칼 융은 인간 안에 그림자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 사랑을 배우지 못하면 파괴를 선택하기도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읽으며 저는 인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제가 얻은 결론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저는 이제 인간을 완전히 믿지 않습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이기적이고.
생각보다 쉽게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며.
생각보다 쉽게 남을 상처 입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을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살면서 저는 반대의 모습도 보았기 때문입니다.
손해를 보면서도 남을 돕는 사람.
보답을 바라지 않고 배려하는 사람.
친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을 선하다고도 말하지 못하고.
악하다고도 말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인간은 그 둘 사이를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다 쓰고 난 지금.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살인이 아니었습니다.
죽일 만한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언제든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만을 말하고 싶었던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제 사람들을 바꾸겠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제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금 덜 잔인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금 더 배려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 가족이.
제 친구가.
제 주변 사람들이.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를 붙잡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 것입니다.
범죄는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혐오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사람은 앞으로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한 명 줄어들고.
누군가를 붙잡아 주는 사람이 한 명 늘어난다면.
세상은 아주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아직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 생각도 언젠가는 바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저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이 소설을 끝까지 쓰게 만든 이유였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디.
누군가를 이해하기 전에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가장 마지막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