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그날 아버지의 집에서 나왔다.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넓고, 가족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조용한 곳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 집은 그랬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야 했고, 말은 낮게 해야 했고, 감정은 손님처럼 잠깐 머물다 사라져야 했다.
아버지는 늘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했고,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했고, 상처를 받았느냐보다 남들이 그 상처를 알게 되느냐가 더 중요했다.
그래도 여자는 그 집을 미워하지 않았다. 미워하기에는 너무 오래 그 집의 딸로 살아왔다.
그날 여자는 남편의 외도 이야기를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꺼냈다.
사실 처음은 아니었다.
몇 번이나 입안에서 꺼냈다가 삼켰고, 몇 번이나 전화번호를 눌렀다가 지웠고, 몇 번이나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섰다.
아버지가 자신을 꼭 안아주며 말해줄 거라고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적어도 한 번쯤은 묻지 않을까 생각했다.
많이 힘들었냐고.
그 사람 때문에 얼마나 아팠냐고.
그동안 혼자 어떻게 버텼냐고.
하지만 아버지는 여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도 한참 동안 창밖만 바라보다가 말했다.
“남자가 사회생활 하다 보면 그런 일 있을 수 있다.”
여자는 처음에 그 말이 자신의 귀를 잘못 스쳐 지나간 줄 알았다.
그래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다시 말했다.
“너도 이제 어린애 아니잖아. 결혼이라는 게 사랑만 가지고 사는 것도 아니고, 집안끼리 얽힌 것도 있고, 서로 필요한 부분도 있는 거야.
네 남편이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 정도 일로 집안을 흔드는 건 생각이 짧다는 말이다.”
여자는 그때 이상하게 남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있었던 장면도, 뻔뻔하게 웃으며 어차피 서로 필요해서 사는 거 아니냐고 말하던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운동회 날 아버지가 정장 차림으로 운동장 끝에 서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모두가 엄마 손을 잡고 김밥을 먹을 때, 아버지는 전화만 하다가 사진 한 장 찍고 돌아갔다.
그때도 여자는 아버지가 바빠서 그런 줄 알았다.
어른들은 바쁘니까. 중요한 사람들은 늘 바쁘니까.
그런데 어쩌면 아버지는 그때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더 사랑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아빠는 내가 부끄러워?”
여자가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집을 나왔을 때 여자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일 친한 친구였다.
대학 시절부터 알았고, 결혼식 때 부케를 받아줬고, 여자가 남편과 싸울 때마다 새벽까지 통화해주던 사람이었다.
친구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며 지금 어디냐고 물었다.
여자는 그냥 좀 만나자고 했다.
오늘은 정말 누가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친구는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다.
“미안해. 나 오늘 진짜 중요한 약속이 갑자기 생겼어. 내일 보면 안 돼?”
여자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정말 괜찮은 사람처럼 말했다.
친구도 아마 그 말을 믿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괜찮다는 말을 믿고 싶어 한다.
그래야 자신이 덜 미안해지니까.
여자는 전화를 끊고 한강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남편이 있는 집은 이미 집이 아니었고, 친정은 조금 전 자신을 밖으로 밀어낸 곳이었고, 친구는 내일의 사람이지 오늘의 사람이 아니었다.
택시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돈도 없지 않았고, 호텔을 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 여자가 갈 수 없는 곳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한강공원 편의점은 새벽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여자는 냉장고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캔맥주 하나를 집었다.
술이 마시고 싶다기보다 손에 들 것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 시간에 편의점에는 남자가 하나 있었다.
남자도 냉장고 앞에 서 있었다.
여자는 별 생각 없이 보았다.
남자는 조금 지친 사람처럼 보였다. 옷차림은 평범했고, 얼굴은 술을 조금 마신 사람 같기도 했고,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잔 사람 같기도 했다.
남자는 여자가 고른 것과 같은 맥주를 집었다.
둘은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계산을 마친 여자는 바깥 테이블에 앉았다.
조금 뒤 남자도 나와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수십 개의 테이블 중에 앉아 있는 사람은 둘뿐이었다.
그런데도 둘은 굳이 가까운 곳에 앉지 않았다.
사람은 정말 외로울 때 오히려 누군가의 옆에 앉지 않는다.
자신이 외롭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여자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핸드폰을 바라봤다.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남편에게서도, 아버지에게서도, 친구에게서도.
갑자기 웃음이 났다.
세상과 이어져 있다고 믿었던 작은 기계는 사실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다는 사실만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여자는 핸드폰 화면을 껐다.
그리고 한참 동안 꺼진 화면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봤다.
울고 있었다.
울고 있다는 사실도 늦게 알았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놓고 걸었다.
일부러 두고 간 것이었다.
버렸다고 말하면 너무 극단적인 사람처럼 보일까 봐 스스로도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버린 것이 맞았다.
더 이상 연락받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몇 걸음 가지 않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여자는 돌아보지 않았다.
“핸드폰 두고 가셨어요.”
남자의 목소리였다.
여자는 천천히 돌아섰다.
남자는 조금 난처한 얼굴로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그 표정이 너무 평범해서 여자는 이상하게 화가 났다.
오늘 하루 종일 아무도 자신을 붙잡지 않았는데, 처음 본 남자가 핸드폰 하나 때문에 자신을 붙잡았다.
“버린 건데요.”
남자가 눈을 깜빡였다.
“네?”
“버렸다고요.”
“핸드폰을요?”
“네.”
“왜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자신도 정확히 몰랐다.
핸드폰을 버리고 싶은 것인지, 자신을 찾지 않는 사람들을 버리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아직 누군가에게 찾을 만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
남자는 핸드폰을 다시 내밀었다.
“그래도 이건 본인이 버리셔야 할 것 같은데요.”
여자는 피식 웃었다.
“왜요. 주운 사람이 버리면 안 돼요?”
“버리는 것도 책임이잖아요.”
그 말에 여자는 처음으로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이상한 사람이었다.
술 취한 것 같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멀쩡한 사람 같지도 않았다.
그냥 자신처럼 어디에도 돌아가지 못한 사람 같았다.
“책임이라는 말 되게 쉽게 하시네요.”
“쉬운 말은 아닌데, 요즘은 다들 너무 쉽게 버리는 것 같아서요.”
남자는 말하고 나서 스스로 놀란 듯 입을 다물었다.
여자는 그 표정을 보고 알았다.
저 말은 나에게 한 말이 아니구나.
저 사람은 지금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내게 하고 있구나.
여자는 다시 테이블 쪽을 바라봤다.
“맥주 한 캔 더 마실 건데, 같이 마실래요?”
남자는 잠시 망설였다.
“제가요?”
“아니면 핸드폰 들고 계속 서 있을 거예요?”
그들은 다시 편의점 앞으로 돌아왔다.
여자는 같은 맥주를 하나 더 샀고, 남자는 이번에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이미 자신 앞에 놓인 맥주도 다 마시지 못한 상태였다.
둘은 처음보다 조금 가까운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침묵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밤의 침묵은 대화보다 덜 잔인했다.
여자가 먼저 말했다.
“아까 왜 그랬어요?”
“뭐가요?”
“핸드폰. 모른 척해도 되잖아요.”
남자는 캔맥주를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누가 찾을 수도 있잖아요.”
“찾는 사람 없어요.”
“그건 모르는 거죠.”
“알아요. 오늘 알았어요.”
남자는 그 말에 더 묻지 않았다.
그게 여자는 이상하게 고마웠다.
사람들은 보통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걱정해서 묻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기 위해 묻는다.
하지만 남자는 묻지 않았다.
그 대신 말했다.
“그럼 오늘은 찾는 사람이 없었던 걸로 해요.”
“오늘은요?”
“내일은 모르는 거니까.”
여자는 웃었다.
웃음이 나와서 웃은 게 아니라 울지 않기 위해 웃은 것에 가까웠다.
“되게 희망적인 척하시네요.”
“희망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그럼요?”
남자는 한강 쪽을 바라봤다.
“그냥 오늘 죽지 않으려고 나온 사람 정도.”
여자는 그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자신도 오늘 비슷한 곳까지 갔다 왔기 때문이다.
죽고 싶다는 말은 꼭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약을 쥐고 있어야만 나오는 말이 아니다.
어떤 날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너무 버거워서, 사는 일이 아주 조용히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자는 한참 뒤에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질문이 싫지 않았다.
아까부터 여자는 자신을 캐묻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도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먼저 물을 용기가 없어 기다렸던 사람 같았다.
“친구가 있었어요.”
“있었어요?”
“아직 살아는 있어요. 근데 이제 친구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남자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어릴 때부터 알던 친구였어요. 거의 가족 같은 친구. 우리 집 부모님도 알고, 그 집 부모님도 알고, 같이 자라고, 같이 사고 치고, 같이 맞고, 군대 가서도 편지하고, 그런 친구요.
저는 사람이 살면서 몇 명 정도는 그냥 믿어도 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가족 아니어도, 피 안 섞였어도, 그냥 내 인생에서 이 사람만큼은 나를 속이지 않겠지 싶은 사람.”
“그 친구가 속였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빌려줬어요. 3억.”
여자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3억이요?”
“네. 제가 결혼하려고 모은 돈이었어요. 집은 못 사도 전세 보태고, 식 올리고, 어떻게든 시작하려고 모은 돈.
근데 그 친구가 정말 죽을 것처럼 말하더라고요.
1년이면 갚을 수 있다고.
처가 쪽 땅이 있고, 팔면 된다고.
위장 이혼 중이라 복잡하다고.
말은 많았는데, 사실 저는 자세히 묻지도 않았어요.
친구가 죽겠다고 하니까.”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돈 빌려주고 결혼하려던 사람도 떠났어요. 이해 못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당연하죠. 저라도 이해 못 했을 거예요.
근데 그때는 그 친구가 무너지면 나도 평생 못 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줬어요. 제가 선택한 거예요.”
“근데요?”
“도박이었어요.”
남자는 웃었다.
“위장 이혼도 아니고 진짜 이혼이었고, 땅도 없었고, 갚을 방법도 없었고, 그냥 도박 빚이었어요.
제가 따지러 갔더니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그러니까 네가 믿을 사람을 믿었어야지. 나 같은 놈을 왜 믿었냐고.”
그는 웃었지만 눈가가 젖어 있었다.
“그게 돈보다 아팠어요. 3억보다. 내가 믿었던 30년이 그 말 한마디에 다 우스워지더라고요.”
여자는 천천히 맥주 캔을 내려놓았다.
“믿은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여자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조금 늦게 깨달았다.
그 말은 남자에게 한 말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남자는 한참 동안 여자를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이 듣고 싶었나 봐요.”
그는 울었다.
소리 내지 않고. 어깨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냥 오랫동안 참고 있던 것이 조금씩 새어 나오듯 눈물이 흘렀다.
여자는 그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남자가 울어서가 아니라, 저 사람도 아직 무너지지 않았구나 싶어서.
정말 무너진 사람은 울지도 못한다.
울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자기 안의 무언가가 살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남자가 물었다.
“그쪽은요?”
여자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테이블 위에 다시 놓인 핸드폰은 조용했다.
“남편이 바람을 폈어요.”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보다 더 아팠던 건 아버지였어요.
오늘 아버지한테 말했거든요.
나 이혼하고 싶다고. 못 살겠다고. 근데 아버지가 그러더라고요.
남자가 사회생활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그 정도도 이해 못 하냐고. 집안 망신 시키지 말라고.”
말을 하는 동안 여자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차분했다.
“남편도 그렇게 말했어요. 어차피 서로 필요해서 사는 거 아니냐고.
원하면 너도 애인 만들라고.
요즘 다 그러고 산다고.
근데 나는 그게 너무 이상했어요.
내가 이상한 사람 같았어요.
나는 아직도 결혼이 그런 게 아니라고 믿고 있었거든요.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서로를 속이지는 않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나만 어린애처럼 보더라고요.”
여자는 웃으려다 실패했다.
“내가 이상한 거예요?”
남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쉽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너무 빨리 위로하면 상대의 아픔을 제대로 듣지 않은 사람이 된다.
그는 한참 동안 여자의 말을 가만히 받아들인 뒤에야 천천히 말했다.
“이상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여자의 눈가가 다시 젖었다.
“왜요?”
“사랑받고 싶었던 거잖아요.”
그 말에 여자는 무너졌다.
남편에게도 듣지 못했고, 아버지에게도 듣지 못했고, 어머니에게도 듣지 못했고, 친구에게도 듣지 못했던 말이었다.
누구도 그녀에게 사랑받고 싶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혼할 거냐, 참고 살 거냐, 위자료는 얼마냐, 집안 망신은 어떡할 거냐,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를 물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가 그 관계 안에서 무엇을 원했는지 묻지 않았다.
여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남자는 그녀를 달래지 않았다.
울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다.
괜찮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게 제일 큰 위로였다.
한참 뒤 여자가 말했다.
“나 오늘 너무 이상하네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왜 이러지.”
“저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울었어요.”
“그러네요.”
“공평하네요.”
여자는 울다가 웃었다.
그날 밤 둘은 오래 이야기했다.
이름은 묻지 않았다.
나이도 묻지 않았고, 사는 곳도 묻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의 직업보다 상처의 모양을 먼저 알게 되었고, 서로의 가족관계보다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먼저 알게 되었다.
여자는 말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제일 잔인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남자가 대답했다.
“가까우니까 잔인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멀면 그렇게까지 못 하죠.”
“그럼 우리는 왜 이렇게 조심할까요?”
“멀어서요.”
“멀어서 다정한 건가요?”
“어쩌면요. 그런데 가끔은 멀어서 할 수 있는 말도 있잖아요.”
여자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새벽 세 시가 넘었고, 한강에는 바람이 불었다.
여자는 몸을 조금 떨었다.
남자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주려다 멈칫했다.
괜히 오해를 살까 봐.
여자는 그 작은 망설임을 보았다.
“괜찮아요. 춥진 않아요.”
“추워 보였어요.”
“춥긴 한데, 그 옷 받으면 제가 또 울 것 같아서요.”
남자는 웃었다.
“그럼 안 드릴게요.”
그들은 다시 한참을 웃었다.
아주 조금,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그러다 여자가 조용히 말했다.
“안아주면 안 돼요?”
남자는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상한 뜻 아니에요.”
“알아요.”
“오늘은 그냥 사람이 너무 필요해서요.”
남자는 천천히 일어났다.
두 사람은 편의점 불빛에서 조금 벗어난 곳, 한강이 보이는 난간 근처에 섰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여자를 안았다.
여자는 처음에는 어깨에 힘을 주고 있다가 아주 천천히 몸을 맡겼다.
그 포옹에는 어떤 욕망도 없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너무 깊었다.
남자는 여자의 등을 가볍게 감싸고 있었고, 여자는 그의 가슴께에 이마를 대고 울었다.
그들은 서로를 갖고 싶지 않았다.
서로의 이름도 몰랐다.
내일 연락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체온이라는 것은 이상했다.
백 마디 말보다 늦게 도착하지만, 도착하고 나면 말보다 오래 남는다.
여자는 그 품에서 남편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어떤 안전함을 느꼈고,
남자는 그 작은 떨림 속에서 자신이 아직 누군가를 해치지 않고 품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서로는 서로를 구하지 않았다.
다만 잠시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었다.
새벽이 조금씩 밝아왔다.
첫 차가 다닐 시간이 가까워졌고, 편의점 안 직원은 졸린 얼굴로 컵라면 박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한강 위로 희미한 빛이 번졌다.
여자는 핸드폰을 다시 손에 들었다.
화면은 여전히 조용했다.
남자가 말했다.
“이제 버리지는 마세요.”
여자가 물었다.
“왜요?”
“누군가 연락할 수도 있으니까요.”
여자는 웃었다.
“오늘처럼요?”
“오늘은 제가 주웠으니까.”
“다음엔요?”
남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둘은 알고 있었다.
다음은 없을 것이라는 걸.
번호를 물으면 다음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묻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서로의 소식이 궁금했고, 앞으로 잘 사는지 알고 싶었고, 가끔 오늘 밤을 함께 기억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둘 다 알았기 때문이다.
이 밤은 이어져야 의미가 있는 밤이 아니라, 여기서 끝나야 지켜지는 밤이라는 것을.
여자가 먼저 말했다.
“고마웠어요.”
남자가 말했다.
“저도요.”
“이름 안 물어봐요?”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왜요?”
“이름을 알면 찾고 싶어질 것 같아서.”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그들은 서로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렇게 오래 보지는 않았다.
오래 보면 붙잡고 싶어질 것 같았다.
여자는 강변을 따라 걸어갔고, 남자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몇 번이나 뒤돌아보고 싶었지만 둘 다 그러지 않았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