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방은 내 방이었다.
벽지도 같았고, 책상도 같았고, 창문도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아주 미세하게 어긋나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 방을 완벽하게 복제한 뒤 원래 자리에 다시 갖다 놓은 것처럼.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속은 울렁거렸다.
입안에서는 쇠를 씹은 것 같은 맛이 났다.
그리고 기억이 없었다.
정확히는 새벽 세 시 이후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러자 기억의 파편 하나가 천천히 떠올랐다.
방 한가운데 누군가 서 있었다.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형체였다.
팔은 길었고.
눈은 검었고.
피부는 초록빛이었다.
그 존재는 한참 동안 내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나는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존재가 말했다.
"브아아아... 쿠루루루..."
나는 대답했다.
"예."
그 존재가 다시 말했다.
"지지직... 브와아아..."
"예."
그리고 기억은 거기서 끝났다.
나는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목 뒤에는 붉은 자국 하나가 남아 있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외계인.
납치.
기억 조작.
인체 실험.
수십 개의 단어가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엄마였다.
"일어났냐?"
나는 엄마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초록색이었다.
엄마는 초록색 꽃무늬 잠옷을 입고 있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젯밤.
초록빛 피부.
지금.
초록빛 잠옷.
우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우연이라는 단어를 믿을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엄마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그리고 한참 동안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한참 동안.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상했다.
너무 오래 보고 있었다.
냉장고 안에서 뭘 그렇게 오래 찾는단 말인가.
아니.
찾는 게 아닐 수도 있었다.
통신.
모선과의 통신.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엄마가 뒤를 돌아봤다.
"뭐 보냐?"
나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아직은 안 된다.
증거가 부족했다.
"엄마."
"왜."
"어젯밤에 누가 왔어?"
엄마는 물컵을 내려놓았다.
"왔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누구?"
"민수."
"민수?"
"그래. 둘이 소주를 얼마나 마셨는지 민수가 널 업고 왔어."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신발장에 토하고."
나는 가만히 있었다.
"화장실 가다 토하고."
나는 계속 가만히 있었다.
"거실에서도 토하고."
엄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나 붙잡고."
"뭐라고 했는데?"
엄마는 내 목소리를 흉내 냈다.
"엄마. 놈들이 왔어."
나는 숨을 죽였다.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외계인."
그리고 등짝에 통증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정신 차려."
나는 움찔했다.
하지만 오히려 더 확신하게 되었다.
만약 정말 외계인이 엄마를 대신하고 있다면?
당연히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숨길 것이다.
나는 침을 삼켰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할 수도 있었다.
그날 오후.
나는 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수는 전화를 받자마자 웃기 시작했다.
"왜 웃어."
"살아 있었네."
"무슨 소리야."
"기억 안 나냐?"
"잘 안 난다."
"다행이다."
"뭐가."
"기억나면 너 오늘 이사 가야 돼."
"왜."
"동네 창피해서."
민수는 사진을 보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사진.
나는 가로수를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이건 뭐냐."
"가로수 위로."
"왜."
"뿌리 뽑히지 않으려고 버티느라 힘들지 않냐고."
나는 사진을 넘겼다.
두 번째 사진.
나는 전봇대 앞에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다.
"이건?"
"지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봇대가?"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민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 진짜 진심이었어."
나는 얼굴을 감쌌다.
그런데 민수는 말했다.
"그거보다 더 심한 거 있다."
"뭔데."
"돌멩이."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영상이 재생되었다.
화면 속 나는 화단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손에는 작은 돌멩이 하나가 들려 있었다.
민수가 물었다.
"뭐 하냐?"
나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대화."
"누구랑?"
"얘랑."
그리고 돌멩이를 들어 보였다.
"돌멩이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얘가 그러는데."
"뭐."
"사람들은 돌멩이를 아무 의미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한대."
민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영상 속 나는 진지했다.
"근데 사실은 아니래."
"왜."
"누군가의 주머니에 들어 있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발밑에 오래 있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가 너무 소중해서 주워 갔을 수도 있대."
나는 돌멩이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자꾸 자기를 작은 돌멩이라고 생각한대."
"그래서?"
"나도 그렇게 생각해."
민수는 영상 뒤에서 욕을 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말했다.
"사람의 흔적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대."
"돌멩이도 기억이 있대."
"길가에 버려진 돌멩이는 없대."
"잠깐 누군가의 기억 속에 맡겨진 거래."
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솔직히 말해서 창피했다.
정말 많이.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는 그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야."
"왜."
"우리 엄마 이상하지 않았냐?"
전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또 시작이냐."
"아니 진짜로."
"뭐가."
"오늘 뭔가 달라."
민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술 아직 안 깼다."
하지만 나는 진지했다.
엄마는 평소 보던 주말 드라마도 안 보고 있었다.
반찬 간도 평소보다 셌다.
용돈을 주면서 만 원을 더 줬는데 모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알아챘을 사람이다.
게다가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현실적으로 접근해야지" 같은 어려운 말까지 했다.
우리 엄마가 원래 저런 말을 했던가?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야."
민수가 말했다.
"그거 다 원래 사람도 하는 거야."
"아니야."
"뭐가 아니야."
"우리 엄마는 안 그래."
민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조용히 말했다.
"그게 확증 편향이라는 거야."
"뭐?"
"넌 지금 외계인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다 외계인처럼 보이는 거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완전히 납득하지도 못했다.
그날 저녁.
나는 마지막 검증을 하기로 했다.
엄마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옆에 앉았다.
그리고 함정을 던졌다.
"엄마."
"왜."
"내가 원래 술 먹고 들어오면 뭐 찾는지 알지?"
엄마는 TV에서 눈도 떼지 않았다.
"뭘."
나는 일부러 말했다.
"콩나물국."
엄마는 그제야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아주 익숙했다.
한심함과 짜증과 애정이 적절하게 섞인 한국 엄마 특유의 눈빛.
"네가 무슨 콩나물국이야."
나는 숨을 죽였다.
엄마는 말을 이어갔다.
"너는 술만 처먹으면 아이스크림 찾았잖아."
나는 가만히 있었다.
"엄마 생각난다면서."
나는 계속 가만히 있었다.
"배스킨라빈스 엄마는 외계인만 처먹던 놈이."
나는 말없이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것만 퍼먹다가 소파에서 자고."
"......"
"일어나서 또 먹고."
"......"
"다음 날 또 먹고."
그 순간.
알았다.
이건 우리 엄마다.
외계인이 아니라.
누구보다 정확하게 내 흑역사를 기억하는 사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긴장이 풀린 탓인지 해서는 안 될 말을 해 버렸다.
"엄마."
"왜."
"사실 엄마 외계인인 줄 알았어."
엄마는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천천히 일어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짝.
등짝에서 불꽃이 튀었다.
"정신 좀 차려."
짝.
"술을 얼마나 처먹은 거야."
짝.
"외계인은 무슨 외계인이야."
나는 맞으면서도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이건 외계인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나는 이 손맛을 안다.
어릴 때 숙제 안 했을 때 맞던 손맛.
피시방 간다고 거짓말했다가 맞던 손맛.
성적표 숨겼다가 맞던 손맛.
그리고 술 먹고 개진상 부렸다가 맞는 바로 그 손맛.
이건 흉내 낼 수 없다.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해도.
인류의 기억을 조작해도.
우리 엄마의 등짝 스매싱만큼은 복제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남은 의심을 버렸다.
엄마는 외계인이 아니었다.
그냥 엄마였다.
너무나도 우리 엄마였다.
그날 밤.
나는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냈다.
술 먹은 다음 날이면 이상하게 찾게 되는 맛이었다.
천천히 퍼먹다가 마지막 한 숟갈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뚜껑을 덮으려다가 멈췄다.
뚜껑 안쪽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외계인.
나는 한참 동안 그 글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내가 진짜 외계인을 본 건 아닌 것 같았다.
오늘의 교훈.
엄마는 의심하지 말자.
술은 적당히 마시자.
특히 다음 날 엄마와 같은 집에 살아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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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로부터 32,000광년 떨어진 관측선 아르카디아.
관측관이 물었다.
"기억 수정은?"
"완료되었습니다."
"노출 위험은?"
"없습니다."
관측관은 화면 속 인간을 바라보았다.
화면 속 인간은 전봇대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다.
"저것도 우리 때문인가?"
담당 요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우유에게 사과한 것도?"
"아닙니다."
"돌멩이와 대화한 것도?"
"그것도 아닙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관측관은 다시 화면을 보았다.
화면 속 인간은 자동문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 감격하고 있었다.
"그럼 저건 뭐지?"
담당 요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희도 아직 연구 중입니다."
관측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관측을 계속한다."
화면이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