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올라온 첫날.
강예나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울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설레지도 않았다.
서울역에서 캐리어를 끌고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많았고.
건물은 높았고.
차는 끊임없이 지나갔다.
드라마에서 보던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누구도 자신을 반겨주지 않았고.
누구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었다.
서울은 생각보다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 바쁜 도시였다.
예나는 캐리어 손잡이를 다시 고쳐 잡았다.
그리고 지하철에 올랐다.
서울 외곽의 작은 중소도시.
지하철역에서 십 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오래된 오피스텔.
보증금 오백.
월세 오십일만 원.
관리비 별도.
처음 가격을 들었을 때는 한숨부터 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침대가 있었고.
냉장고가 있었고.
세탁기가 있었고.
전자레인지와 책상도 있었다.
취업 준비생이 처음 서울에 올라와 생활하기에는 오히려 이쪽이 나았다.
더 싼 방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공실이었다.
침대부터 사야 했고.
냉장고도 사야 했고.
세탁기도 사야 했다.
결국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오히려 이쪽이 현실적이었다.
오피스텔 문을 처음 열던 날.
예나는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넓지는 않았다.
새 건물도 아니었다.
복도 벽지는 조금 낡아 있었고.
엘리베이터도 가끔 덜컹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좋았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생긴 자기 공간이었다.
짐을 정리하고.
옷을 걸고.
침대 위에 이불을 펼쳤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서서 천천히 둘러봤다.
작은 침대.
작은 책상.
작은 냉장고.
작은 창문.
딱 그 정도.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놓였다.
저녁이 되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도착했어?"
"응."
"방은 괜찮고?"
"좋아."
거짓말이었다.
좋은 방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를 안심시키기에는 충분한 대답이었다.
엄마도 알았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밥 먹었어?"
"응."
그것도 거짓말이었다.
엄마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말했다.
"힘들면 내려와."
예나는 웃었다.
"안 내려가."
"왜."
"취업해야지."
엄마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나는 괜히 창문 밖을 바라봤다.
회색 건물 벽이 보였다.
"엄마."
"왜."
"나 잘할 수 있겠지?"
엄마는 잠시 웃었다.
"배고프면 밥부터 먹어."
그 말에 예나도 웃었다.
그렇게 전화는 끝났다.
취업 준비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력서를 고치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공고를 찾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리고 탈락했다.
또 탈락했다.
한 번 더 탈락했다.
메일함에는 비슷한 문장들이 쌓여갔다.
귀하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처음에는 상처를 받았다.
세 번째는 괜찮았다.
다섯 번째부터는 익숙해졌다.
그래도 메일을 열기 전 심장이 뛰는 건 똑같았다.
어느 날은 칠만 원짜리 면접 정장을 샀다.
계산대 앞에서 카드 결제를 누르는데 손가락이 무거웠다.
칠만 원이면 며칠을 먹고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런데도 샀다.
면접장에 갈 때마다 입을 옷이 필요했으니까.
취업 준비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교통비.
증명사진.
정장.
스터디카페.
식비.
그리고 월세.
통장 잔고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그날도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예나는 작은 꽃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유리창 너머로 안개꽃이 보였다.
하얗고.
조용하고.
화려하지 않은 꽃.
예나는 안개꽃을 좋아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좋았다.
누군가의 주인공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 것 같아서.
가만히 있어도 충분히 아름다워 보여서.
가격표를 봤다.
만 원.
예나는 잠시 계산기를 두드렸다.
만 원이면 국밥 두 그릇.
편의점 도시락 세 개.
삼각김밥 여러 개를 살 수 있었다.
"안 되겠지."
혼잣말을 하고 돌아섰다.
세 걸음.
다섯 걸음.
그리고 다시 꽃집으로 돌아왔다.
"이거 주세요."
결국 안개꽃 한 다발을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 손에는 안개꽃.
다른 손에는 편의점 봉투.
봉투 안에는 컵라면 하나와 삼각김밥 하나가 들어 있었다.
원래는 따뜻한 밥을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후회는 되지 않았다.
오피스텔로 돌아온 예나는 가장 먼저 안개꽃을 꺼냈다.
예전에 천 원 주고 사둔 유리병에 물을 채웠다.
그리고 안개꽃을 꽂았다.
좁은 방이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냉장고 하나.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안개꽃 하나 들어왔을 뿐인데.
방이 조금 달라 보였다.
조금 덜 외로워 보였다.
예나는 컵라면에 물을 붓고 기다렸다.
창밖에는 여전히 회색 벽이 보였다.
취업은 아직 안 됐다.
월세는 다음 달에도 내야 한다.
학자금 대출도 남아 있다.
통장 잔고는 넉넉하지 않다.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안개꽃을 보고 있으니 조금은 괜찮아졌다.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라면을 다 먹은 뒤.
예나는 노트북을 켰다.
취업 사이트.
그리고 아르바이트 사이트.
몇 군데 지원서를 넣고.
몇 군데 이력서를 수정했다.
그러다 습관처럼 네이버 커뮤니티를 열었다.
취업 고민 게시판이었다.
오늘도 비슷한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스물여섯인데 아직 취업을 못 했습니다.
면접만 열 번 떨어졌어요.
친구들은 다 취업했는데 저만 뒤처지는 기분입니다.
예나는 한참 동안 댓글을 읽었다.
괜찮다는 사람도 있었고.
힘내라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도 비슷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글이 조금 위로가 됐다.
세상에 나만 불안한 게 아니라는 사실.
나만 뒤처진 게 아니라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괜찮아졌다.
예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가끔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밤.
예나는 안개꽃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불을 껐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일은 조금 더 괜찮아질지도 모른다고.
그 시절의 강예나는 아직 몰랐다.
몇 달 뒤.
자신의 하루를 바꾸게 될 한 사람이.
조용히 인생 안으로 걸어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