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책을 나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하루 종일 사람들 속에서 살다가 문득 사람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졌을 뿐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혼자 걷는 일이 좋아졌다.
좋아한다는 표현이 맞을까. 정확히는 편안하다.
예전에는 늘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사랑을 찾았고, 우정을 찾았고, 의미를 찾았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제보다 성장한 내일을 꿈꾸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무언가를 손에 넣을 때마다 또 다른 결핍이 생겨났다.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사람처럼.
갈증을 해소하려고 마시는데 더 목이 마른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나는 찾는 일을 조금 줄였다.
대신 보기 시작했다.
걷다가 개미를 보고, 나무를 보고, 지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본다.
가끔은 내 그림자를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 개미는 왜 저 무거운 먹이를 끌고 갈까.
저 나무는 왜 매년 잎을 버릴까.
저 사람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질문의 방향이 바뀐다.
나는 왜 살고 있을까.
그런데 재밌는 건 생각보다 세상은 그 질문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개미는 자기 일을 하고, 나무는 잎을 떨구고, 바람은 불고, 비는 내린다.
우주의 별들도 나의 불안과 행복에 관심이 없다.
유전자는 생존을 말하고, 물리학은 법칙을 말한다.
그 안에는 나의 외로움도, 기쁨도, 사랑도 없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인간은 그 빈 공간에 이야기를 채워 넣는 존재라는 것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보고, 누군가를 사랑한다.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의미를 만들기 위해.
관조란 답을 찾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답이 없음을 인정한 채 세상을 오래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
비는 그냥 비이고, 바람은 그냥 바람이며, 삶은 그냥 삶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오늘 저녁의 바람이 유난히 좋았다고,
귀뚜라미 소리가 아름다웠다고, 누군가의 안부가 문득 궁금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관조의 시작이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잠시 멈춰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그리고 그 세상 한가운데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