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민이 그 애를 좋아하게 된 건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예뻤다.
그게 전부였다.
중학교 3학년 남자애의 사랑은 대부분 그 정도 수준에서 시작된다.
이름은 서연이었다.
긴 머리.
흰 피부.
조용한 성격.
공부도 잘했다.
선생님들 평도 좋았다.
반 여자애들과도 잘 지냈다.
한마디로.
좋은 애였다.
적어도 재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야."
점심시간.
재민이 도시락 뚜껑을 덮으며 말했다.
"나 서연 좋아하는 것 같음."
도윤은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태윤은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이미 다 알고 있었으니까.
"티 남."
태윤이 말했다.
"뭐가."
"다."
"아니거든?"
"아니긴."
도윤도 웃었다.
재민은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시절에는 좋아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자신을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재민은 자주 서연을 봤다.
수업 시간에도.
복도에서도.
운동장에서도.
그냥 보면 기분이 좋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급식시간.
애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웃음소리가 들렸다.
서연도 그 무리 안에 있었다.
재민은 별생각 없이 지나가다가 우연히 그 말을 들었다.
"진짜 냄새 나잖아."
누군가가 말했다.
애들이 웃었다.
"어제 체육 시간에 옆에 있었는데."
또 웃음.
"와."
재민도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같은 반 남학생 하나였다.
키가 작고.
말수가 적고.
친구도 별로 없는 아이.
애들은 웃고 있었다.
서연도 웃고 있었다.
재민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상했다.
정말 별것 아닌 장면인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날 연구회 모임.
재민은 평소보다 말이 적었다.
"왜."
도윤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님."
"서연 때문?"
재민은 움찔했다.
태윤이 피식 웃었다.
"차였냐."
"아니거든."
"그럼."
재민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말했다.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누가."
"그냥."
태윤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도윤은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았다.
재민은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하기 어려웠다.
사람이 웃었다.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며칠 뒤.
서연은 또 웃고 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아이 이야기였다.
그 아이가 발표를 망쳤다고.
그 아이가 넘어졌다고.
그 아이가 이상하다고.
애들은 웃었다.
서연도 웃었다.
재민은 문득 깨달았다.
그 애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친절했다.
예의도 있었다.
공부도 잘했다.
친구도 많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꼭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재민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누군가를 싫어하게 된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사람이라는 게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 같았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그렇게 나누기 어려운 것들.
도윤은 나중에 이 시절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살면서 처음 실망한 건 악인에게서가 아니었다.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서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