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회는 끝났다.
정확히 말하면 끝났다고 말하기도 조금 이상했다.
해산을 선언한 적도 없었고, 마지막 모임을 거창하게 가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안전살인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모여 무언가를 토론하는 시간은 이제 끝나 가고 있다는 것을.
도윤은 책상 앞에 앉아 오래된 노트를 펼쳤다.
첫 장에는 어설픈 글씨가 적혀 있었다.
사람은 왜 살인을 하는가.
그 문장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뉴스를 보다 궁금했고, 범죄 다큐멘터리를 보다 궁금했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궁금했다.
그때는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공부하면.
조금 더 생각하면.
조금 더 사람을 이해하면.
언젠가는 결론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인생은 늘 비슷했다.
중학생 때도 그랬다.
그때의 나는 세상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나뉜다고 믿었다. 착한 사람은 착하고 나쁜 사람은 나쁘다고 생각했다. 정의로운 사람은 정의롭고 비열한 사람은 비열하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조금 달라졌다.
사람에게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행동 뒤에는 이유가 있고 환경이 있고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그것이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또 다른 결론을 얻었다.
사람은 결국 이해받고 싶어 하는 존재라고 믿었다. 대화를 하면 오해는 풀리고, 진심은 결국 전해진다고 생각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에는 또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이기적이었고, 생각보다 쉽게 자기 행동을 정당화했으며, 생각보다 쉽게 남을 상처 입혔다.
그때마다 나는 결론을 얻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틀렸다.
지금 돌아보면 내 인생은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답이 무너지는 과정에 더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재민이 사건도 그랬다.
나는 인간을 안다고 생각했다.
재민이는 좋은 친구였다.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었고, 술자리에서는 가장 크게 웃었으며, 가족 이야기를 할 때면 늘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살인미수범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인간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예전에 한나 아렌트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녀는 악마 같은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 속에서 악이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았다.
재민이는 괴물이 아니었다.
그 아이들도 괴물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조롱했던 아이들은 살인미수 피해자가 되었고, 피해를 입었던 재민이는 가해자가 되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 아이들을 가해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표현조차 완전하지 않았다.
재민이는 피해자이기도 했고 가해자이기도 했다.
그 아이들 역시 누군가를 상처 입힌 사람이었고 동시에 피해자였다.
나는 그 사실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사람도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토머스 홉스는 인간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놓인 존재라고 보았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을 이야기했다.
라 로슈푸코는 인간의 덕행 대부분이 교묘하게 위장된 자기애라고 말했다.
예전의 나는 그런 생각들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자기 행동을 정당화한다.
생각보다 쉽게 누군가를 미워한다.
생각보다 쉽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
재민이도 그랬고.
그 아이들도 그랬고.
어쩌면 나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재민이에게서 후회를 보았기 때문이다.
태윤에게서 책임감을 보았기 때문이다.
제수씨에게서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하지만 인간은 때때로 자기 이익과 상관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인간은 잔인하다.
하지만 인간은 때때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기도 한다.
인간은 쉽게 상처를 준다.
하지만 인간은 상처 입은 사람을 끝까지 붙잡고 놓지 않기도 한다.
어쩌면 인간은 선한 존재도 악한 존재도 아닐 것이다.
그 둘 사이를 끝없이 흔들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을 바꾸겠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 말은 생각보다 쉽게 오만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내가 바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누구도 대신 선택할 수 없다.
재민이가 그랬고.
나 역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이제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조금 덜 잔인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내 가족이.
내 친구가.
언젠가 태어날 나의 아이가.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를 붙잡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살인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범죄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앞으로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갈 것이다.
그 사실은 아마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한 명 줄어들고, 누군가를 붙잡아 주는 사람이 한 명 늘어난다면 세상은 아주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칸트는 결과가 아니라 의지를 이야기했다.
나는 이제 그 말에 조금 공감하게 되었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가 건넨 친절이 배신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우리가 베푼 선의가 오해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돕고자 했던 순간의 의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선택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인간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을 완전히 포기하지도 않는다.
알베르 카뮈는 한겨울 깊은 곳에서 자신 안에 지지 않는 여름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나 역시 인간에 대해 실망한 날이 많았다.
사람을 이해했다고 착각했던 날도 많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사람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
어쩌면 이 노트는 살인에 대한 기록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범죄에 대한 연구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결국 이것은 인간에 대한 기록이었다.
상처받고.
분노하고.
사랑하고.
후회하고.
무너지고.
다시 살아가려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
도윤은 노트를 천천히 덮었다.
정답을 찾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마 앞으로도 수없이 틀릴 것이다.
지금의 결론도 언젠가는 무너질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알 것 같았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답을 얻는 일이 아니라,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마지막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도윤은 조용히 불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전살인연구회.
끝.
그리고 아마.
또 다른 질문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