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민이를 만나고 돌아온 뒤에도 도윤은 한동안 면회실에서 나눴던 대화를 잊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면회를 가기 전에는 재민이가 걱정됐다.
막상 만나고 나니 이제는 재민이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더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사람을 이해하면 뭔가 보일 줄 알았다.
범죄를 이해하면 범죄를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살인을 이해하면 살인을 예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반대였다.
알면 알수록 사람은 단순하지 않았고, 알면 알수록 정답은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며칠 뒤 도윤과 태윤은 오랜만에 둘이 술을 마셨다.
예전 같으면 재민이가 가장 먼저 와서 안주를 시키고 있었을 것이다. 술집 문을 열자마자 "왜 이렇게 늦었냐"며 투덜거렸을 것이고, 한 시간쯤 지나면 가장 크게 웃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둘 다 자연스럽게 재민이가 앉던 자리를 비워 두었다.
굳이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둘 다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간 뒤 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면회 다녀오고 나서 계속 생각했다."
도윤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뭘."
태윤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나는 아직도 재민이가 이해된다."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윤은 계속 말했다.
"오해하지 마라. 잘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을 죽이려고 한 건 잘못이다. 그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나는 자꾸 그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재민이 입장이었다면 정말 끝까지 참을 수 있었을까."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영업정지 통보를 받고 가게 문은 열어 놓고 있는데 손님은 줄고, 당장 두 달 동안 수입이 막힐 걱정을 하고 있고, 배달이라도 뛰면서 버텨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눈앞에서 원인 제공을 한 애들이 웃고 있다. 그것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다. 내가 정말 끝까지 참을 수 있었을지."
도윤은 술잔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근데 나는 그게 무섭더라."
"뭐가."
"이해가 된다는 거."
태윤은 도윤을 바라봤다.
도윤은 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하듯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나도 재민이 편만 들었다. 그 애들 욕만 했다. 진짜 인간 같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오히려 그게 무서워졌다."
"왜."
"이해가 되는 순간부터 사람은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기 시작하거든."
태윤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재민이도 그랬다. 처음에는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했을 거다. 실제로 피해를 입은 것도 맞고. 그런데 결국 사람을 죽이려고 한 순간부터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 애들도 마찬가지다. 자기들은 장난이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자기들이 그렇게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 안 했을 수도 있다."
도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결국 다 자기 입장에서 생각한다."
"그건 맞다."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는 게 어려운 것 같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술집 안은 시끄러웠다.
어딘가에서는 회식이 한창이었고, 다른 테이블에서는 연인들이 웃고 있었다.
평범한 밤이었다.
그런데 둘이 나누는 이야기는 조금도 평범하지 않았다.
한참 뒤 태윤이 문득 말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우리도 웃기다."
"뭐가."
"우리가 계속 그 애들을 가해자라고 불렀잖아."
도윤은 순간 멈칫했다.
정말 그랬다.
재민이 사건 이후 계속 그렇게 불러 왔다.
너무 자연스럽게.
너무 당연하게.
태윤이 말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냐. 재민이 사건만 놓고 보면 그 애들은 피해자잖아."
도윤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반박할 수 없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영업정지 사건에서는 그 아이들이 원인을 제공했다.
분명 비난받을 행동도 했다.
하지만 살인미수 사건만 놓고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람을 죽이려고 달려든 것은 재민이였다.
그 아이들은 피해자였다.
도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태윤이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는 친구니까 재민이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그런데 그 애들도 자기 부모 입장에서는 피해자였을 거다."
도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결국 피해자와 가해자가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하게 나뉘는 게 아닌 것 같다."
태윤은 고개를 들었다.
도윤은 말을 이어 갔다.
"재민이는 피해자였다. 억울한 일을 당했고 실제로 삶에 타격을 받았다. 그런데 동시에 가해자가 됐다."
"......"
"그 애들은 원인을 제공했고 잘못된 행동을 했다. 그런데 동시에 피해자가 됐다."
"......"
"제수씨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가장 큰 상처를 받았고."
"......"
"우리도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막지 못했다."
도윤은 잔을 비웠다.
"누가 완전히 선하고 누가 완전히 악한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태윤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교사잖아."
"안다."
"그래서 원래는 사람은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도윤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지금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다. 실제로 변하는 아이들도 있다. 문제아였던 애가 정신 차리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모범생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잠시 침묵.
"근데 이번 일 겪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어떻게."
"사람은 바뀌는 존재라기보다 원래 여러 모습을 가진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태윤은 술잔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사람을 너무 쉽게 정의하려고 한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성실한 사람. 폭력적인 사람. 그런데 실제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재민이만 봐도 그렇잖아. 좋은 친구였고 좋은 남편이었고 좋은 아버지였다. 그런데 동시에 살인미수를 저질렀다."
"......"
"그게 모순 같지만 사실은 같은 사람 안에 다 있었던 거다."
도윤은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같은 사람 안에 다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이번 연구의 가장 무서운 결론인지도 몰랐다.
술집을 나설 때는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예전 같으면 재민이가 가운데서 떠들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재민이가 완전히 사라진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재민이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지만, 재민이가 남긴 질문들은 여전히 둘 사이를 걷고 있었다.
도윤은 문득 연구회를 처음 만들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살인이 궁금했다.
범죄가 궁금했다.
악인이 궁금했다.
그래서 연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그들이 연구한 것은 살인도 아니었고 범죄도 아니었다.
가해자도 아니었고 피해자도 아니었다.
결국 그들이 연구하고 있었던 것은 인간이었다.
상처받는 인간.
분노하는 인간.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인간.
후회하는 인간.
용서하지 못하는 인간.
용서하는 인간.
무너지는 인간.
그리고 다시 살아가려는 인간.
도윤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안전살인연구회는 끝나 가고 있었다.
살인을 막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사람을 바꾸는 방법도 찾지 못했다.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정답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게 되었다.
인간은 생각보다 선하지도 않았고, 생각보다 악하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고, 생각보다 쉽게 남을 상처 입혔다.
그러면서도 생각보다 오래 버티고, 생각보다 깊게 후회하며, 생각보다 누군가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연구가 완전히 실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질문이 있었다.
살인을 이해하려 했고.
범죄를 이해하려 했고.
인간을 이해하려 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뿐이었다.
인간이 이런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뒤에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질문의 답은 이제 연구회가 아니라 도윤 자신이 찾아야 할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