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회실로 가는 길 내내 도윤과 태윤은 평소보다 말이 적었다.
어색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서 그랬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
사람은 생각보다 말을 아끼게 된다.
괜히 아무 말이나 했다가 상대를 더 힘들게 만들까 봐.
괜히 위로한답시고 꺼낸 말이 상처가 될까 봐.
둘 다 그런 마음이었다.
태윤은 운전대를 잡고 한참 동안 창밖만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
"사실 아직도 잘 안 믿긴다."
도윤은 무슨 말인지 굳이 묻지 않았다.
재민 이야기였다.
태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가 맨날 연구회 한다고 사람 이야기하고 범죄 이야기하고 살인 이야기하고 그랬잖아.
근데 솔직히 말하면 난 재민이 저럴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도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뉴스 속 사람은 늘 남이었다.
범죄자는 늘 화면 속 사람이었다.
재민은 아니었다.
재민은 술자리에서 제일 먼저 웃던 사람이었고, 누가 힘들다고 하면 이유도 묻지 않고 밥부터 사주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사람을 죽이려 했다.
그 사실이 아직도 낯설었다.
"근데."
태윤이 말했다.
"요즘은 또 그런 생각도 든다."
"무슨."
"재민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누구라도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도윤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을 자기도 수없이 했기 때문이었다.
면회실 문이 열리고 재민이 들어왔다.
살이 빠졌다.
얼굴도 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표정이었다.
재민은 예전보다 훨씬 조용해져 있었다.
사람이 무너진 얼굴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생각한 사람의 얼굴 같았다.
재민은 둘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왔냐"
도윤도 웃었다.
"재민아"
태윤도 웃었다.
"꼴이 말이 아니네."
재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거울 보면 나도 놀란다."
잠깐 웃음이 흘렀다.
그 짧은 웃음이 끝나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오래된 친구들끼리만 가능한 침묵이었다.
어색하지는 않은데 편하지도 않은.
할 말은 많은데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침묵.
결국 재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너희 둘 올 거라고 들었을 때."
잠시 말을 멈췄다.
"나오기 싫었다."
태윤이 고개를 들었다.
재민은 씁쓸하게 웃었다.
"부끄럽더라."
그 말에는 변명도 없고 농담도 없었다.
그냥 진심이었다.
"형량 때문도 아니고 여기 있는 것 때문도 아니다. 그냥 내가 이런 꼴이 된 걸 너희한테 보여주는 게 싫더라."
도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재민은 계속 말했다.
"사실 나 여기 들어오고 처음 며칠은 계속 그 애들 생각만 했다.
진짜 죽도록 미웠다.
아직도 솔직히 안 미운 건 아니다.
근데 사람이 하루 종일 생각만 하다 보면 결국 자기한테 돌아오더라."
재민은 잠시 시선을 내렸다.
"처음에는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억울했고. 분했고. 화가 났다.
그런데 계속 생각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그 생각이 안 되더라."
"......"
"그 애들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결국 병을 든 건 내 손이었다."
면회실이 조용해졌다.
재민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상한 게 뭔지 아냐. 나는 평생 내가 그런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는 인간.
분노를 못 참고 폭발하는 인간.
그런 사람들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잠시 침묵.
"근데 아니더라."
재민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그런 인간이 될 수 있더라."
도윤은 그 말을 듣고 있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건 후회의 목소리이기도 했지만.
무너진 자존심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저런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재민은 지금 그 이미지가 산산조각 난 상태였다.
태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후회하냐."
재민은 한참 동안 생각했다.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후회한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엄청."
그리고 잠시 후 덧붙였다.
"근데 그 말도 이상하다."
"왜."
"후회는 하는데 화도 난다."
재민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게 제일 무섭다. 잘못한 걸 안다. 내가 선 넘은 것도 안다. 근데 아직도 그날 생각하면 화가 난다. 그러니까 내가 나를 못 믿겠더라."
재민은 두 사람을 바라봤다.
"예전에는 인간이라는 게 머리로 사는 줄 알았다. 옳고 그름 알고, 참을 줄 알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서 사는 줄 알았다. 근데 아니더라. 사람은 생각보다 감정으로 사는 존재였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터질 때 얼마나 무서운지도 이제 알겠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윤이 입을 열었다.
"나도 솔직히 말할까."
재민이 고개를 들었다.
도윤은 웃지도 못했다.
"나 한동안 너 원망했다."
재민 눈이 흔들렸다.
"왜."
"왜 그런 짓 했냐고."
도윤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왜 참지 못했냐고. 왜 하필 그 순간이었냐고."
잠시 침묵.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 다음 생각이 들더라."
"무슨."
"왜 전화 한 통 더 안 했을까."
재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윤은 말을 이었다.
"네가 힘든 거 알고 있었다. 영업정지 당하고 힘들어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근데 다들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그냥 넘겼다.
괜찮겠지. 버티겠지.
원래 재민이는 강하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도윤은 낮게 웃었다.
"근데 안 강하더라."
그 말에 재민이 고개를 숙였다.
"사람이 원래 안 강한 건데."
도윤이 말했다.
"우리가 멋대로 강할 거라고 생각한 거지."
태윤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도 비슷하다."
"......"
"나는 교사니까 사람을 가르친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학생들 상담도 하고 문제도 해결하고. 근데 이번 일 겪으면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 들더라."
"무슨 생각."
"친구 하나도 못 붙잡는데 내가 누굴 가르치고 있었나."
재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윤은 웃었지만 눈은 웃지 못했다.
"그래서 한동안 되게 괴로웠다."
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재민이 아주 조용히 말했다.
"미안하다."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그 말 하려고 온 거 아니다."
"......"
"그리고 제수씨 걱정도 하지 마라."
재민 눈빛이 흔들렸다.
도윤은 계속 말했다.
"우리가 부자는 아니다. 솔직히 큰돈도 못 준다. 대신 모른 척은 안 한다. 애도 그렇고 제수씨도 그렇고. 적어도 완전히 혼자 두지는 않을 거다."
태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연구회가 원래 그런 거 아니냐."
그 순간.
재민은 처음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참고 있던 무언가가 천천히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형량 이야기를 들을 때도.
가게를 정리할 때도.
판결을 받을 때도.
참았던 감정이었다.
그는 낮게 웃었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목소리였다.
"야."
"왜."
"너희들 진짜 오지랖 넓다."
도윤이 피식 웃었다.
"이제 알았냐."
재민도 따라 웃었다.
아주 오랜만에.
진심으로.
그리고 그 웃음 뒤에야 비로소 세 사람은 알 수 있었다.
안전살인연구회가 연구한 것은 결국 살인자가 아니었다.
분노와 상처와 후회 속에서도 사람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간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