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도윤은 한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잠은 들었다.
피곤하니까.
회사에 가야 하니까.
아침이 되면 일어나야 하니까.
그런데 새벽 두세 시쯤이면 꼭 한 번씩 깼다.
그리고 눈을 뜨면 이상하게 재민 생각이 났다.
처음에는 단순한 안타까움이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가 무너졌으니까.
그 정도는 당연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달랐다.
안타까움만은 아니었다.
불편함.
죄책감.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
그런 감정들이 섞여 있었다.
도윤은 어느 날 새벽 침대에 누워 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그날.
재민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면.
정말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절대 병을 들지 않았을 거라고.
절대 폭발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 질문 앞에서 도윤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쉽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아니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안 한다."
"재민은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한 거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왜냐하면 재민을 알기 때문이었다.
재민은 원래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사람들과 잘 지냈고.
싸움을 싫어했고.
누군가 부탁하면 거절도 잘 못했다.
술자리에서도 늘 분위기를 맞추는 쪽이었다.
그런 사람이.
살인미수.
도윤은 그 단어를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도 알고 있었다.
재민이 특별한 괴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범했기 때문이다.
너무 평범해서 문제였다.
회사 점심시간.
도윤은 혼자 식당 구석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는 누군가 회사 욕을 하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거래처 욕을 하고 있었다.
어딘가에서는 정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는 사람 욕을 했다.
누군가는 세상 욕을 했다.
그 모습들을 바라보다가 도윤은 문득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늘 화가 나 있었다.
운전하다 욕하고.
인터넷에서 욕하고.
회사에서 욕하고.
집에 가서도 욕한다.
세상에는 분노가 넘쳐났다.
다만 대부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뿐이었다.
그 순간.
도윤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재민과 자신은 얼마나 다른 걸까.
정말로.
근본적으로.
얼마나 다를까.
그 질문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왜냐하면 답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도윤은 퇴근길에 일부러 재민 가게가 있던 골목으로 걸어갔다.
이미 간판은 내려가 있었다.
창문은 어두웠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웃고 떠들던 공간이었다.
단골들이 드나들던 공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도윤은 한참 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화가 났다.
가해자들에게.
재민에게.
세상에게.
자기 자신에게.
모든 것에.
하지만 동시에 알았다.
그 화가 답이 아니라는 것도.
집으로 돌아온 도윤은 술을 한 캔 꺼냈다.
그리고 베란다에 앉아 캔을 따며 생각했다.
우리는 도대체 뭘 연구한 걸까.
살인을 연구한다면서.
범죄를 연구한다면서.
인간을 연구한다면서.
결국 가장 가까운 친구 하나도 지켜내지 못했다.
그 생각이 들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처음부터 틀렸던 건 아닐까.
사람을 이해하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이유를 알면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그 자체가 오만이었던 건 아닐까.
도윤은 휴대폰을 꺼냈다.
연구회 단체방.
마지막 메시지는 며칠 전이었다.
예전에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방이었다.
술 먹자는 이야기.
영화 이야기.
시시한 농담.
축구 이야기.
주식 이야기.
별 이야기가 다 올라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용했다.
도윤은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결국 아무 말도 쓰지 못했다.
대신 창밖을 바라봤다.
어두운 밤이었다.
멀리 아파트 불빛들이 보였다.
그 불빛 하나하나마다 사람들의 삶이 있을 것이다.
행복한 사람도 있고.
불행한 사람도 있고.
분노하는 사람도 있고.
참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득.
도윤은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너무 거창한 것 아닐까.
누군가를 설득하고.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누군가를 구원한다는 생각.
어쩌면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도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연구회의 질문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 사람은 살인을 하는가."
가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질문으로.
안전살인연구회의 마지막 연구는.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