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민의 재판이 끝난 뒤에도 연구회는 한동안 모이지 못했다.
정확히는.
모일 이유를 찾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 연락을 했다.
"술이나 한잔하자."
"오늘 시간 되냐."
"오랜만에 보자."
그런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누구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만나면 결국 재민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고.
재민 이야기를 하면 결국 자기 이야기까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무서웠다.
가장 먼저 연락한 건 태윤이었다.
짧은 단체 메시지였다.
이번 주 금요일.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
평소 같으면 농담도 섞였을 메시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농담을 하지 않았다.
도윤은 짧게 알겠다고 답했고.
해원도 늦게 확인했다.
금요일 밤.
세 사람은 예전처럼 작은 술집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색했다.
재민이 없어서였다.
도윤은 빈 의자를 바라봤다.
별것 아닌 의자였다.
그런데 자꾸 눈이 갔다.
예전에는 늘 거기에 재민이 앉아 있었다.
술이 떨어지면 먼저 주문했고.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농담을 던졌고.
누가 힘들다고 하면 제일 먼저 술잔을 채워주던 사람이었다.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한참 동안 별 이야기 없이 술만 마시던 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도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실감이 안 났다.
재민이 살인미수.
그 문장을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가슴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태윤은 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옆에 있었으면 달라졌을까."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기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윤은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말하면 재민 상태 이상했던 거 알고 있었다. 영업정지 나오고 나서부터 사람이 달라졌잖아. 웃는 것도 줄었고 술 마시는 것도 줄었고. 그런데도 그냥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잠시 침묵.
"다들 힘들 때가 있으니까."
도윤은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나도 그랬다."
"사실."
도윤은 창밖을 바라봤다.
"나도 많이 바빴다."
"......"
"회사도 정신없었고."
"......"
"집안 일도 있었고."
잠시 침묵.
"근데 그건 변명이 안 되더라."
태윤이 고개를 들었다.
도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친구가 무너지고 나니까 계속 생각난다. 왜 전화 한 통 더 안 했을까. 왜 밥 한 번 더 먹자고 안 했을까. 왜 괜찮냐고 한 번 더 안 물어봤을까."
술집 안이 조용해졌다.
해원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두 사람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태윤이 해원을 바라봤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해원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생각했다.
정확히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모르겠다."
해원이 말했다.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
"우리 때문에 그런 건지."
"......"
"아니면 원래 막을 수 없는 일이었던 건지."
태윤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해원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근데 한 가지는 안다."
"뭔데."
"우리는 자꾸 사람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다."
도윤이 눈을 들었다.
해원은 잔을 내려놓았다.
"재민은 좋은 사람이었다."
"맞다."
태윤이 말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잠시 침묵.
"근데 좋은 사람이라고 무너지지 않는 건 아니더라."
술집이 조용해졌다.
"예전에는."
해원이 말했다.
"나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어느 정도 구분된다고 생각했다."
"......"
"근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창밖에서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웃고 있었고.
누군가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평범한 밤이었다.
"재민은 좋은 사람이었다."
해원이 다시 말했다.
"근데 누군가를 죽이려고 했다."
"......"
"그 애들은 분명 잘못했다."
"......"
"근데 그 애들도 자기들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 안 할 거다."
정적.
"결국."
해원은 씁쓸하게 웃었다.
"사람은 자기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인 것 같다."
도윤은 그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럼 답이 없는 거 아니냐."
해원은 웃지 않았다.
"모르겠다."
"......"
"진짜 모르겠다."
그날 술자리는 예전보다 훨씬 일찍 끝났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재민 사건은 끝났다.
판결도 끝났다.
가게도 사라졌다.
그런데.
정작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제 시작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도윤은 혼자 걸었다.
늦은 밤이었다.
가로등 아래를 지나며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은 왜 무너질까.
그리고.
누군가가 무너지는 걸 정말 막을 수 있을까.
그 질문은.
그날 밤 도윤을 쉽게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앞으로 한동안.
연구회 사람들 모두를 따라다니게 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