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재민은 경찰 조사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물론 전부 기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복도.
열린 현관문.
웃고 있던 얼굴.
그건 기억났다.
하지만 정확히 언제 손이 움직였는지.
언제 소주병을 집었는지.
첫 번째로 무슨 말을 했는지.
그건 흐릿했다.
마치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분명한 건 하나였다.
그 순간 재민은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계획하지도 않았다.
복수하려고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배달을 하러 왔고.
음식을 전달했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놈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재민은 지금도 그 표정을 기억했다.
무서워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미안해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화난 표정도 아니었다.
그냥.
재밌다는 표정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장난감을 보는 것 같은 표정.
자신이 던지는 말에 상대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구경하는 사람의 표정.
그 표정이 재민을 끝까지 따라다녔다.
"왜요."
놈이 웃으며 말했다.
"가족 얘기하면 안 돼요?"
재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사실 틀린 말도 아니잖아."
놈은 계속 웃고 있었다.
"솔직히 우리 때문은 아니지."
"......"
"아저씨가 술 판 거고."
"......"
"아저씨가 걸린 거고."
"......"
"아저씨가 영업정지 당한 거고."
잠시 침묵.
그리고.
놈은 마지막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아저씨 가족이 힘든 것도 결국 아저씨 때문이지."
재민은 복도 구석에 놓여 있던 빈 소주병을 바라봤다.
그 순간에도 머릿속 한편에서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내려가라.
지금이라도 내려가라.
이 애들 상대하지 마라.
집에 가라.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아이도 있다.
가게도 다시 열어야 한다.
지금 여기서 무너지면 진짜 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놈은 재민 표정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아저씨."
"......"
"설마 진짜 때리려고?"
안쪽에 있던 다른 놈도 웃었다.
"야."
"왜."
"그만 놀려."
"왜."
"진짜 치겠다."
"못 쳐."
첫 번째 놈은 확신에 차 있었다.
"어차피 못 친다니까."
그리고.
재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가 나한테 뭘 하겠어."
그 순간이었다.
재민 손에 들린 소주병이 움직였다.
머리가 먼저였는지.
손이 먼저였는지는 모른다.
다만.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쨍.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놈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공포가 나타났다.
"미친 새끼야!"
비명이 터졌다.
안쪽에 있던 놈이 뛰어나왔다.
재민은 그 소리를 들었지만 멈추지 못했다.
이미 늦었다.
너무 늦었다.
몇 달 동안 쌓인 분노.
억울함.
수치심.
생활고.
불안.
잠 못 이루던 밤.
SNS 속 웃음.
영업정지 안내문.
아내의 걱정.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재민은 누군가를 죽이려 했을까.
나중에 그는 수없이 생각했다.
정답은 아직도 모르겠다.
그 순간에는.
정말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그는 상대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복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한 놈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다른 놈은 욕설을 퍼부으며 뒤로 물러났다.
누군가는 경찰에 신고했고.
누군가는 구급차를 불렀다.
원룸 문들이 하나둘 열렸다.
사람들이 복도로 나오기 시작했다.
재민은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바닥.
깨진 유리.
피.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손.
그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게..."
재민은 중얼거렸다.
"이게 뭐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 누구도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가장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은 재민 자신이었다.
몇 분 뒤.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관들은 상황을 확인하자마자 재민에게 다가왔다.
"내려놓으세요."
재민은 이미 빈손이었다.
"손 보여 주세요."
재민은 말없이 손을 들었다.
도망칠 생각도 없었다.
변명할 생각도 없었다.
수갑이 채워지는 순간.
재민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복도 바닥을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해원의 말이 떠올랐다.
이해와 정당화는 다르다.
그때는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었다.
경찰차 문이 닫히고.
원룸 건물이 점점 멀어졌다.
재민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배달을 하던 사람이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던 사람이었다.
다시 가게를 열기 위해 버티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소식은.
그날 밤.
안전살인연구회 친구들에게도 전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