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주문이 들어온 건 밤 아홉 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재민은 원룸촌 근처 편의점 앞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하루 종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 탓에 허리가 조금 뻐근했고, 헬멧 안쪽에는 땀이 배어 있었다.
가게 문을 닫고 배달 일을 시작한 뒤로 시간 감각은 조금 이상해졌다.
예전에는 저녁 아홉 시쯤이면 손님들이 술을 한두 병 더 시키거나 단골들이 계산하면서 농담을 던지던 시간이었는데, 이제 그는 남의 음식을 들고 남의 집 초인종을 눌러야 했다.
그게 싫은 건 아니었다.
일은 일이었다.
돈을 벌어야 했고, 움직여야 했고, 집에 가만히 앉아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다만 가끔 오토바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는 가게 안에서 손님을 맞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영업정지 안내문이 붙은 자기 가게 앞을 지나쳐 남의 음식을 배달하고 있었다.
재민은 그런 생각을 끊으려고 배달 앱을 확인했다.
주소는 멀지 않았다.
오래된 원룸 건물이었다.
그는 음식을 받아 오토바이에 실었고, 평소처럼 길을 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주문이 자신의 마지막 이성을 시험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재민은 잠깐 고개를 들었다.
낡은 원룸 건물이었다.
계단 입구에는 광고 전단지가 몇 장 붙어 있었고, 우편함에는 오래된 고지서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어디에나 있는 건물이었다.
누군가 막 잠들 준비를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아직 술을 마시고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배달 음식 하나로 늦은 저녁을 때우려는 그런 공간.
재민은 배달 가방에서 음식을 꺼내 계단을 올랐다.
3층.
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재민은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아주 짧은 시간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다 상대의 얼굴에 먼저 웃음이 번졌다.
그 웃음을 보는 순간 재민은 알았다.
그날 가게에 있었던 놈이었다.
그 애들 중 하나.
자신의 가게에서 술을 마시고, 계산할 때 미성년자라고 말했고, 경찰 앞에서 거짓말을 했고, 나중에는 SNS에 그 일을 장난처럼 올렸던 놈들 중 하나였다.
재민의 손에 들린 배달 봉투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상대는 그걸 봤다.
그리고 더 크게 웃었다.
"와, 진짜 세상 좁네."
안쪽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데?"
문을 연 놈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와 봐. 진짜 웃긴 사람 왔다."
잠시 뒤 방 안쪽에서 또 다른 놈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놈도 재민을 알아봤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웃었다.
재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배달 봉투를 내밀었다.
"음식 받았으면 들어가라."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적어도 재민 자신은 그렇게 느꼈다.
그는 정말 그냥 가려고 했다.
여기서 더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애들이 어떤 애들인지도 알고 있었고, 자기가 지금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인지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었다. 아내가 있었고 아이가 있었다. 가게도 다시 열어야 했다.
그런데 놈들은 그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 아직도 화났어요?"
문을 연 놈이 물었다.
재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돌아섰다.
그러자 뒤에서 웃음 섞인 목소리가 따라왔다.
"아니,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그때 이후로 많이 힘들었어요? 영업정지 두 달이라면서요. 생각보다 오래 닫았던데."
재민은 계단 쪽으로 걸어가던 발을 멈췄다.
그 말투가 문제였다.
걱정하는 말투도 아니었고, 미안해하는 말투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아픈 곳을 정확히 짚은 뒤 그 반응을 구경하려는 말투였다.
재민은 뒤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그만해라."
"왜요. 저희가 뭐 욕했어요? 그냥 물어본 건데."
안쪽에 있던 다른 놈이 웃으며 말했다.
"야, 그만해. 아저씨 또 신고하겠다."
말리는 말처럼 들렸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그 말 속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재민은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그냥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문 앞에 서 있던 놈이 한 걸음 복도로 나왔다.
"근데 진짜 아저씨도 좀 신기해요. 솔직히 말하면 우리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근데 법적으로 보면 아저씨가 신분증 확인 제대로 안 한 거고, 아저씨가 술 판 거고, 아저씨가 걸린 거잖아요.
우리가 무슨 칼 들고 술 팔라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왜 계속 우리한테 화가 나 있어요?"
재민은 천천히 돌아섰다.
"너희는 진짜 미안한 마음이 하나도 없냐."
그 말을 하는 순간에도 재민은 어쩌면 아주 작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그래도 사람이라면.
저 말 앞에서는 조금쯤 표정이 변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놈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웃었다.
"미안한 건 있죠."
재민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놈은 그걸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생각보다 일이 커졌네, 그 정도?"
방 안쪽에서 웃음이 터졌다.
재민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놈은 계속 말했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그게 다 아저씨 책임이잖아요.
우리는 그냥 법대로 한 거고, 아저씨는 걸린 거고. 그걸 왜 우리한테 사과하라고 해요?
오히려 우리도 피해자라고 하면 피해자 아닌가.
미성년자인데 술 팔았잖아요."
재민의 손이 천천히 주먹으로 말렸다.
놈은 그걸 봤다.
분명히 봤다.
그리고 한 발 더 들어왔다.
"지금 나 때리고 싶죠?"
재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표정에 다 나오는데. 진짜 한 대 치고 싶잖아요."
놈은 복도 벽에 기대며 웃었다.
"근데 못 하잖아."
복도 공기가 순간 가라앉았다.
재민은 숨을 멈춘 것처럼 서 있었다.
"왜 못 하냐면, 아저씨도 알잖아요.
여기서 나 건드리면 아저씨 진짜 끝나는 거.
지금도 가게 문 닫고 배달 뛰는데, 여기서 폭행까지 하면 진짜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까 화는 나는데 아무것도 못 하는 거잖아요.
그게 제일 짜증나는 거 아니에요?"
재민은 그 말을 듣는 동안 자기 안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분노가 끓어오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몸이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머릿속 한편에서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내려가라.
그냥 내려가라.
지금 돌아서면 된다.
저 애들은 저런 애들이다.
네가 상대할 가치가 없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그날의 웃음이, 영업정지 안내문이, 새벽마다 계산기를 두드리던 손이, 아내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아이를 바라보며 괜찮은 척하던 자기 모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놈은 재민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아저씨, 진짜 웃긴 게 뭔지 알아요?"
재민은 낮게 말했다.
"그만하라고 했다."
"아니, 진짜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게요."
놈은 웃고 있었다.
"그 정도로 억울하면 진작 찾아올 줄 알았거든요. SNS도 봤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더라고요."
그 말에 재민의 눈이 움직였다.
놈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봤네."
그리고 웃었다.
"역시 봤네."
안쪽에 있던 놈도 복도로 나왔다.
"야, 그거 봤대?"
"본 것 같은데."
"그럼 더 웃기네."
재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놈은 아주 천천히, 일부러 한 글자씩 눌러 말하듯 말했다.
"우리가 뭐라고 썼더라. 세상 사람들이 생각보다 착하다?"
웃음.
"근데 진짜 맞더라고요."
재민은 더 이상 계단으로 내려가지 못했다.
놈은 이제 확신한 얼굴이었다.
재민이 화가 났다는 것을.
그리고 그 화를 끝까지 참으려고 한다는 것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잔인해질 수 있었다.
"아저씨도 생각보다 착하네요. 아니면 겁이 많은 건가."
그 말에 방 안쪽 놈이 또 웃었다.
문 앞의 놈은 멈추지 않았다.
"근데 솔직히 이해는 해요. 애도 있다면서요.
가족도 있고, 다시 가게 열어야 하고, 대출도 갚아야 하고. 그러면 참아야지.
어쩌겠어요. 화난다고 되는 게 없잖아요."
재민은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내 가족 얘기는 하지 마라."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놈의 눈빛이 아주 짧게 반짝였다.
자기가 정확한 곳을 건드렸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의 눈빛이었다.
"왜요."
"하지 말라고."
"아니, 가족 때문에 힘든 거 맞잖아요. 아저씨가 힘든 건 아저씨 사정이고, 가족이 힘든 것도 결국 아저씨 사정이지.
솔직히 말해서 아저씨 가족이 우리 때문에 힘든 게 아니잖아요."
놈은 잠깐 멈췄다.
그리고 웃었다.
"아저씨 때문에 힘든 거지."
그 순간.
재민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계단 아래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도, 방 안쪽에서 들리던 음악 소리도, 멀리서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도 전부 사라졌다.
복도 구석에는 빈 소주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재민은 그것을 봤다.
아니.
봤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순간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때 재민은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짧고 선명하게.
그리고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그는 자기 자신이 너무 낯설어졌다.
그 낯섦이 사라지기도 전에.
손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