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도 재민은 배달을 계속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침이 오면 일어났고, 점심시간이 되면 오토바이를 탔고, 저녁이 되면 배달 앱 알림이 울렸다. 길 위를 달리고, 음식을 전달하고, 다시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재민은 알고 있었다.
무언가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걸.
사람은 이상했다.
큰 충격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다.
오히려 사람을 오래 괴롭히는 건 작은 것들이었다.
밤마다 떠오르는 표정.
우연히 지나가다 보게 되는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
가게 앞을 지나칠 때마다 보이는 영업정지 안내문.
그리고.
휴대폰 속 캡처 사진.
재민은 이미 여러 번 삭제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우지 못했다.
지워버리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될 것 같았다.
며칠 뒤 연구회 모임.
이번에는 해원도 나왔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도윤이 맥주잔을 들며 말했다.
"살아는 있었네."
해원이 웃었다.
"죽을 만큼 바빴다."
"일 때문에?"
"일도 있고."
해원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여자도 있고."
순간 셋이 동시에 해원을 쳐다봤다.
태윤이 가장 먼저 웃었다.
"이 자식 봐라."
도윤도 웃었다.
"우리는 일 때문에 바쁜 줄 알았는데."
해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그러는 거지."
재민도 오랜만에 웃었다.
그런데 오래가지는 못했다.
해원이 재민 얼굴을 보더니 물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잠시 뒤.
재민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영업정지.
배달.
SNS.
그리고 캡처 사진.
말이 끝났을 때는 술이 꽤 비어 있었다.
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열받는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 안 되는 게 있어. 걔들은 진짜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 안 하는 거냐."
도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제일 이상하다. 보통 사람은 누가 피해를 입으면 조금이라도 찔리는 게 있잖아."
재민은 씁쓸하게 웃었다.
"나도 그걸 기대했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솔직히 영업정지보다 그게 더 화난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있었으면 여기까지 안 왔을 것 같다."
그때 해원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건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셋의 시선이 동시에 해원에게 향했다.
해원은 잔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한 행동보다 자기가 한 행동을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왜 그랬는지 설명하고, 왜 어쩔 수 없었는지 설명하고, 왜 자기 잘못이 아닌지 설명한다. 그래서 죄책감보다 정당화가 먼저 나온다."
잠시 정적.
"그 애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자기들이 누군가 인생을 흔들었다는 사실보다 자기들이 법적으로 틀린 행동을 안 했다고 믿는 게 더 중요할 거다."
태윤이 물었다.
"근데 그게 가능해?"
"가능하니까 그러고 있는 거겠지."
해원은 담담하게 말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결과보다 책임을 좁게 본다. 자기 손으로 직접 때리지 않았으니까, 직접 훔치지 않았으니까, 직접 망하게 하지 않았으니까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다."
도윤이 한숨을 쉬었다.
"근데 그것도 웃기지 않냐. 결국 저 애들 때문에 재민이 가게 문 닫은 건 사실이잖아."
해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애들 때문에만은 아니다."
재민이 눈을 들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기분 나빴을 것이다.
그런데 해원이 하는 말이라 끝까지 들었다.
"재민도 실수는 했다. 신분증을 끝까지 확인하지 않은 건 사실이니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사람들은 자기 잘못은 확대해서 보고 남의 잘못은 축소해서 본다. 재민은 지금 자기 실수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고, 그 애들은 자기 실수를 축소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다."
해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결국 둘 다 틀린 거다."
재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해원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매일 밤 계산기를 두드리며 스스로를 탓하고 있었다.
그 애들은 반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고 있었다.
어쩌면 둘 다 극단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재민은 아직 납득할 수 없었다.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해원이 조용히 물었다.
"지금도 죽이고 싶냐."
순간 공기가 멈췄다.
태윤과 도윤도 말이 없어졌다.
재민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말했다.
"가끔."
정직한 대답이었다.
"맨날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살다가도 문득 생각난다. 그날 웃던 얼굴이. 그때는 진짜 찾아가서 한 대라도 때리고 싶다."
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지도 않았다.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냥 조용히 말했다.
"그 감정은 이해한다."
재민은 해원을 바라봤다.
"그런데."
해원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이해된다고 해서 해도 되는 건 아니다."
그날 밤.
재민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해원의 말을 계속 떠올렸다.
이해와 정당화는 다르다.
예전부터 연구회에서 수없이 이야기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처음으로 그 말이 자기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날 이후.
재민은 자신도 모르게 그 애들 SNS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확인만 하려고 했다.
정말 그랬다.
하지만 사람은 원래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더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재민은 아직 몰랐다.
그 습관이 앞으로 자신을 얼마나 위험한 곳으로 끌고 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