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오토바이를 타는 것 자체가 힘든 건 아니었다. 재민도 젊었을 때는 오토바이를 꽤 오래 탔고, 길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가게에서 일할 때는 손님이라도 있었다. 주문도 들어왔고 설거지도 해야 했고 주방도 정리해야 했다. 몸을 움직이고 있으면 머릿속이 잠시라도 비워졌다.
그런데 배달은 달랐다.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
음식을 전달하고 다시 오토바이로 돌아오는 시간.
그 짧은 순간마다 생각이 파고들었다.
두 달.
영업정지 두 달.
가게 문에 붙어 있는 안내문.
새벽마다 계산기를 두드리던 자신.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있던 그 애들.
재민은 헬멧 안에서 한숨을 쉬었다.
생각을 안 하려고 시작한 일인데 오히려 더 생각하게 됐다.
저녁 여덟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배달 기사들이 자주 쉬는 편의점 앞.
재민은 캔커피 하나를 뽑아 벤치에 앉았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야, 요즘 얼굴이 왜 그러냐."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배달 기사 일을 오래 한 형이었다.
동네에서만 십 년 넘게 일한 사람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재민도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안녕하세요."
"안녕은 무슨 안녕이야. 사람 얼굴이 반쪽이 됐는데."
형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더니 재민 옆에 앉았다.
잠시 아무 말 없이 재민 얼굴을 보던 형이 말했다.
"미성년자 사건 때문이지."
재민은 씁쓸하게 웃었다.
"동네에 소문 다 났나 보네요."
"좁잖아. 그리고 장사하는 사람들끼리는 그런 얘기 금방 돈다."
형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솔직히 나는 네 이름 듣고 좀 놀랐다. 네가 그런 걸로 걸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재민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가 낮게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형은 한참 동안 담배를 피우다가 갑자기 물었다.
"걔들 이름 기억나냐."
재민은 몇 초 동안 생각하다가 이름을 말했다.
순간 형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 변화는 아주 짧았지만 재민은 놓치지 않았다.
"왜요."
형은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며 말했다.
"역시 걔들이었네."
재민은 처음으로 몸을 앞으로 숙였다.
"형도 알아요?"
"안다고 해야 하나."
형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동네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별의별 인간들을 다 본다. 근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애들이 있어. 무슨 큰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깡패처럼 무서운 애들도 아닌데 사람을 정말 피곤하게 만드는 애들."
재민은 말없이 들었다.
"편의점 사장이 싫어하고, PC방 사장이 싫어하고, 술집 사장이 싫어한다. 그런데 정작 왜 싫어하는지 물어보면 본인들은 이해를 못 한다. 항상 자기들은 억울하다고 말하거든. 누가 뭐라고 하면 '우리가 때렸냐', '우리가 훔쳤냐', '우리가 칼 들고 협박했냐' 이런 식이다."
형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항상 문제가 생기는 곳에는 걔들이 있더라."
재민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위로가 됐다.
자기만 당한 게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더 화가 났다.
"그럼 원래 저런 애들이었다는 거네요."
형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사람 함부로 단정 짓는 건 싫어한다. 근데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걔들은 남이 얼마나 힘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애들이다."
그 말은 재민 가슴에 오래 남았다.
남이 얼마나 힘들어지는지 관심이 없다.
어쩌면 그게 가장 무서운 말 같았다.
잠시 뒤 형이 휴대폰을 꺼냈다.
"사실 오늘 너 붙잡은 이유가 따로 있다."
"뭔데요."
"원래는 안 보여주려고 했다."
재민은 형 얼굴을 바라봤다.
장난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 불편해 보였다.
"괜히 보여줘서 더 열받을까 봐."
"뭔데요."
"근데 네가 알아야 할 것 같더라."
형은 휴대폰을 내밀었다.
카카오톡 창이었다.
누군가가 보낸 캡처 이미지가 여러 장 있었다.
"같이 배달하는 동생이 보내준 거다. 걔도 동네 애들이라 얼굴은 다 알거든. 우연히 보고 저장해 둔 모양이야."
재민은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냥 SNS 캡처겠거니 했다.
하지만 첫 번째 사진을 보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술병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낯익은 얼굴들도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 적혀 있는 글.
짧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재민의 손끝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하기에는 충분했다.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민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편의점 앞에는 오토바이 소리와 자동차 소리가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재민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그는 처음으로 영업정지보다 더 큰 분노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