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적어도 재민은 그렇게 기억했다.
점심 장사는 무난했고, 저녁에는 단골손님들이 몇 팀 들어왔다. 주방에서는 기름 끓는 소리가 났고, 홀에서는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알바생은 주문을 받느라 뛰어다녔고, 재민은 주방과 홀을 오가며 정신없이 움직였다.
장사를 하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엄청 잘된 것도 아니고 망한 것도 아닌 날.
그냥 하루가 무사히 지나갈 것 같은 날.
재민은 그날이 그런 날이라고 생각했다.
밤 아홉 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남자 넷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재민은 습관적으로 한 번 훑어봤다.
요즘은 나이를 알 수가 없었다. 스무 살 같은 고등학생도 있었고, 고등학생 같은 직장인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신분증 확인 좀 할게요."
그중 한 명이 주민등록증을 꺼냈다.
재민은 사진과 얼굴을 비교했다.
크게 이상한 점은 없었다.
"나머지 분들도요."
그러자 옆에 있던 놈이 웃으며 말했다.
"아, 저희 친구들이에요."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해서."
"형, 그냥 보여 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머지 셋은 지갑이 없다고 했다.
차에 두고 왔다.
운동하느라 안 가져왔다.
바로 옆이라 금방 가져올 수 있다.
이런 말들이 이어졌다.
재민은 잠시 망설였다.
그 순간에도 주방에서는 안주가 밀리고 있었고, 배달 주문 알림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계산해 달라고 손을 들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술이 떨어졌다고 불렀다.
그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다음부터는 꼭 챙겨 오세요."
그리고 돌아섰다.
놈들은 잘 먹었다.
안주도 여러 개 시켰고 술도 꽤 마셨다.
중간중간 웃음소리가 크긴 했지만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재민도 점점 신경을 끄게 됐다.
장사하다 보면 별의별 손님이 다 있다.
저 정도는 평범한 축에 속했다.
밤 열한 시쯤.
재민은 계산서를 출력해 들고 갔다.
"계산 도와드릴게요."
십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 시끄럽게 떠들던 놈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피식.
한 놈이 웃었다.
재민은 그 웃음이 이상하게 기분 나빴다.
"왜 그러세요?"
놈은 대답 대신 친구를 바라봤다.
그러자 다른 놈도 웃었다.
그리고.
가장 구석에 앉아 있던 놈이 천천히 말했다.
"아저씨."
"네."
"저희 미성년자인데요."
순간.
재민은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
"미성년자라고요."
놈은 웃고 있었다.
농담을 하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재미있는 장면을 구경하는 사람 같았다.
재민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겨우 말했다.
"장난하지 마라."
그러자 한 놈이 휴대폰을 꺼냈다.
"장난 아닌데."
"......"
"신고할까요?"
순간.
가게 소음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재민은 놈들을 바라봤다.
그제야 모든 게 연결됐다.
신분증.
지갑.
친구라는 말.
차에 두고 왔다는 말.
처음부터 계획이었다.
"야."
재민이 낮게 말했다.
"그럼 너희도 문제 되는 거 아니냐."
그러자 놈들이 동시에 웃었다.
그 웃음은 묘하게 사람을 열받게 했다.
죄책감이 없었다.
당황도 없었다.
오히려 즐기는 것 같았다.
한 놈이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아저씨."
"......"
"요즘 세상에 그거 무서워하는 사람 별로 없어요."
옆에 있던 놈도 거들었다.
"근데 진짜 궁금하다."
"뭐가."
"이거 영업정지 몇 개월짜리예요?"
재민은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놈들은 웃고 있었다.
진짜로.
재미있다는 듯이.
한 놈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검색해 볼까?"
"야."
"왜."
"벌금도 나오지 않냐?"
"그런가?"
"아저씨 큰일 나셨네."
그리고 또 웃음.
그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재민은 이를 악물었다.
"계산은 해야지."
그러자 놈 중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뭐?"
"저희 미성년자인데."
"먹었잖아."
"근데 술 판 건 아저씨잖아요."
놈은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표정까지 지었다.
그게 더 기분 나빴다.
"아저씨가 법 어긴 거 아니에요?"
재민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태도의 문제였다.
상대방 인생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
그리고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한 태도.
한 놈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
"왜 그렇게 심각해요."
"......"
"설마 인생 망하는 건 아니죠?"
그 순간.
재민은 처음으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아직은 분노보다 불안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는 아직 몰랐다.
이 일이 단순히 술값 십만 원짜리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며칠 뒤 경찰서를 가게 될 거라는 것도.
몇 주 뒤 구청 조사실에 앉게 될 거라는 것도.
그리고 몇 달 뒤.
자신이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라는 것도.
그날의 재민은 아직 몰랐다.
그저.
눈앞의 놈들이 몹시 기분 나쁜 인간들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