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모임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그날 연구회는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이상하게 후련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이 남았다.
특히 해원이 마지막에 했던 말.
외도의 시작은 육체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솔직해지지 못하는 순간부터일 수도 있다.
그 말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재민은 가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도 떠올렸고, 태윤은 퇴근길에 문득 생각났고, 도윤도 회사에서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가끔 생각했다.
누구도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날은 재민 가게 영업이 끝난 뒤였다.
해원은 없었다.
도윤과 태윤만 늦은 시간 가게에 들렀다.
셋은 간단히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릉에서 만난 여자 이야기도 잠깐 나왔다.
재민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연락은 계속 하고 있는 거냐."
태윤은 괜히 맥주잔만 만지작거렸다.
"계속 하긴 한다."
"계속 한다는 게 어느 정도인데."
"거의 매일."
재민이 박수를 쳤다.
"끝났네."
도윤도 웃었다.
"그 정도면 끝난 거다."
"아니라니까."
"남자들이 꼭 그 말 하더라."
셋은 한참 웃었다.
이런 이야기만 하면 좋겠지만.
연구회는 늘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도윤이 휴대폰을 꺼낸 건 그때였다.
"근데 이거 봤냐."
재민은 기사 제목만 보고도 얼굴이 굳어졌다.
외도를 알게 된 남편이 상간남을 찾아가 흉기를 휘둘렀다는 기사였다.
피해자는 중상.
가해자는 살인미수 혐의.
기사 아래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살인미수는 잘못이라고 욕했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 일 아니라고 쉽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상간남을 욕하고 있었다.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난번 이야기랑 연결돼서 생각하게 되더라."
재민은 기사를 다시 읽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뒤.
천천히 말했다.
"나는 솔직히 이해는 된다."
도윤은 피식 웃었다.
"너 지난주에도 그 말 했잖아."
"아니."
재민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진짜로."
그리고 잠시 생각한 뒤 말을 이었다.
"정당화는 안 한다. 그건 분명히 잘못이다. 사람을 죽이려고 칼을 들고 찾아가는 순간 이미 선은 넘은 거니까. 근데 이해는 된다."
도윤은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뭐가 그렇게 이해되는데."
재민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예전에는 이런 기사 보면 그냥 범죄 기사였다. 근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어떻게."
"사람이 보인다."
재민은 창밖을 바라봤다.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다. 누군가를 믿고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매일 얼굴 보고, 같이 밥 먹고, 같이 미래를 이야기하고, 같이 돈 모으고, 같이 계획 세우고."
잠시 침묵.
"그런데 그 사람이 몇 년 동안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고, 그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해 봐라."
태윤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재민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솔직히 그 순간 무슨 감정이 들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멀쩡하게 말하고 있지만 막상 당하면 어떤 사람이 될지도 자신 없다."
도윤이 물었다.
"그럼 칼 들고 찾아가는 것도 이해된다는 거냐."
재민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 생각한 뒤 말했다.
"그 행동은 이해 안 된다."
"근데?"
"그 직전까지의 감정은 이해된다."
도윤은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그 부분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재민이 고개를 들었다.
"왜."
"사람은 자꾸 자기 자신을 피해자 자리에 넣으니까."
잠시 침묵.
도윤은 말을 이어갔다.
"기사를 보면 다들 남편 입장에서 생각한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근데 저 기사에는 사실 네 명의 인생이 들어 있다."
"네 명?"
"남편. 아내. 상간남. 그리고 아이가 있었다면 아이까지."
재민은 말이 없었다.
도윤은 계속 말했다.
"물론 잘못은 잘못이다. 외도한 사람이 가장 큰 잘못을 한 것도 맞다. 근데 사람들은 이상하게 자기 감정이입한 사람의 범죄는 더 쉽게 이해하려고 한다."
태윤이 물었다.
"예를 들면?"
"뉴스 댓글 보면 있잖아."
도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나라면 나도 그랬을 것 같다.'"
"'저 정도면 참작해 줘야 한다.'"
"'솔직히 이해된다.'"
잠시 말을 멈췄다.
"근데 그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면 세상 범죄자 중에 이해 안 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남을까."
이번에는 태윤이 입을 열었다.
"나는 둘 다 맞는 말 같긴 하다."
재민이 웃었다.
"또 둘 다냐."
"들어봐."
태윤도 웃었다.
"학교에서 느끼는 건데 사람은 생각보다 배신에 약하다."
"배신?"
"응."
태윤은 학생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이 싸우는 이유를 보면 의외로 돈 때문도 아니고 성적 때문도 아니다. 친구라고 믿었던 애가 뒤에서 욕하고 다녔다든가, 자기 비밀을 다른 사람한테 말하고 다녔다든가, 자기 편인 줄 알았던 애가 갑자기 돌아섰다든가."
잠시 침묵.
"맞아서 우는 애보다 배신당해서 우는 애가 더 많다."
세 사람 모두 잠시 조용해졌다.
태윤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저 남편 감정이 이해는 된다. 신뢰가 무너진 거니까."
"근데."
"그렇다고 칼을 들면 안 되는 것도 맞고."
재민이 한숨을 쉬었다.
"결국 또 같은 이야기네."
"뭐."
"이해와 정당화."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계속 핵심인 것 같다."
시간이 꽤 흘렀다.
맥주병도 몇 개 비어 있었다.
그러다가 도윤이 문득 물었다.
"근데 솔직히 말해 보자."
재민과 태윤이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
도윤은 웃지 않았다.
"너희는 진짜 당사자가 되어도 지금처럼 말할 수 있을 것 같냐."
정적.
생각보다 길었다.
재민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태윤도 마찬가지였다.
아까까지는 기사였다.
남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질문이 바뀌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만약.
정말 내가 당사자라면.
정말 내가 배신당했다면.
정말 내가 모든 것을 잃었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냉정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그리고 세 사람은 아직 몰랐다.
다음 모임에서.
그 질문 때문에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이게 될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