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이 오랜만에 나온 날이어서였을까.
그날 연구회는 쉽게 끝날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미 자정은 넘었고.
술도 꽤 들어갔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먼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이야기는 더 깊어졌다.
재민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그런데 나는 진짜 이해 안 되는 말이 하나 있다."
도윤이 웃었다.
"너는 이해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진짜로."
재민은 진지했다.
"불륜 기사 보면 꼭 나오는 말."
"뭔데."
"'순간의 실수였습니다.'"
순간.
태윤이 피식 웃었다.
도윤도 웃었다.
해원은 말없이 잔을 들었다.
재민은 고개를 저었다.
"저 말은 들을 때마다 이상하다."
도윤이 먼저 물었다.
"왜."
"실수라는 말 때문."
"그게 왜."
재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실수라는 게 원래 의도와 다르게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약속 시간을 착각했다거나, 잘못된 문자 하나를 다른 사람한테 보냈다거나, 운전하다 길을 잘못 들었다거나 그런 거 말이다.
그런데 불륜은 이상하지 않냐."
그는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기 시작했다.
"연락을 한다."
"만난다."
"계속 만난다."
"배우자에게 숨긴다."
"거짓말한다."
"관계를 유지한다."
잠시 침묵.
"그 과정 전부가 선택인데 어떻게 실수냐."
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이해된다."
재민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실수라는 말은 이상하게 책임을 줄여주는 느낌이 있다.
술 먹고 운전해 놓고 실수였다고 하고, 바람피워 놓고 실수였다고 하고, 누군가에게 상처 줘 놓고 실수였다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대부분 실수가 아니라 선택인 경우가 많다."
도윤은 잔을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근데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재민은 기다렸다는 듯 쳐다봤다.
"또 시작이다."
도윤은 웃었다.
"아니, 불륜이 옳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럼."
"사람이 생각보다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거다."
도윤은 잠시 말을 정리했다.
"회사 다니다 보면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사람들은 늘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
화도 참지 못하고, 욕망도 못 참고, 스트레스도 못 견디고, 외로움도 못 견딘다."
"그래서?"
"그래서 나는 불륜도 결국 인간의 약함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재민은 바로 반박했다.
"약한 거랑 책임 없는 건 다른 문제다."
"맞다."
"그러면 끝난 거 아니냐."
"아니."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책임이 없다고 한 적 없다."
잠시 침묵.
도윤은 맥주를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10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다 치자.
서로 대화도 없고, 집에 들어가도 공기처럼 지내고, 이미 관계는 끝났는데 서류만 남아 있는 상태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을 만나서 처음으로 이해받는 기분을 느꼈다.
물론 그게 불륜으로 이어지면 잘못이다.
그런데 나는 그 감정 자체까지 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본다."
재민은 곧바로 말했다.
"감정은 죄가 아니지."
"맞다."
"근데 행동은 다르다."
"그것도 맞다."
둘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싸우는 것 같으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조용히 듣고 있던 태윤이 입을 열었다.
"나는 둘 다 맞는 말 같긴 하다."
재민이 웃었다.
"선생님답다."
"들어봐."
태윤도 웃었다.
"학교에 있으면 이런 걸 많이 본다.
아이들이 잘못을 했을 때 처음에는 대부분 변명을 한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그 변명에도 이유는 있다.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친구랑 싸웠고, 스트레스가 있었고, 억울한 일도 있었고."
잠시 말을 멈췄다.
"근데 그 이유들이 행동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윤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해와 용서를 자꾸 구분하게 된다.
이해는 할 수 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알겠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용서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 말에 모두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선이 해원에게 향했다.
오늘도 가장 늦게 말하고 있었다.
재민이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판결 내려봐라."
해원은 피식 웃었다.
"나는 오히려 다른 부분이 더 궁금하다."
"뭔데."
"왜 사람들은 불륜이 들킨 날부터 배신이 시작됐다고 생각할까."
순간.
셋 다 조용해졌다.
해원은 천천히 잔을 내려놓았다.
"나는 불륜의 시작이 모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상대방에게 솔직해지지 못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재민이 눈을 깜빡였다.
도윤도 생각에 잠겼다.
태윤은 해원의 말을 기다렸다.
"사람 마음은 변할 수 있다."
해원이 말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랑이 식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올 수도 있다.
그 감정 자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잠시 침묵.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선택이다."
"......"
"배우자에게 솔직해질 것인가."
"관계를 정리할 것인가."
"아무 일 없는 척할 것인가."
"거짓말을 시작할 것인가."
해원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불륜 때문에 무너지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고 본다."
재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끝까지 들어."
해원은 웃었다.
"정확히 말하면 육체적인 관계 때문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잠시 말을 골랐다.
"사람들이 무너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믿었던 사람이 몇 달 동안, 몇 년 동안 나를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오늘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내일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거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해원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배신은 들킨 날 시작되는 게 아니다. 거짓말을 시작한 날부터 이미 시작된다."
한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재민도.
도윤도.
태윤도.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아까까지의 "실수냐 선택이냐"보다 더 어려운 질문이 눈앞에 놓인 것 같았다.
사람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왜 솔직해지지 못하는가.
왜 끝난 관계를 끝났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새벽 두 시가 넘어갈 무렵.
재민이 마지막 잔을 비우며 말했다.
"진짜 신기하다."
"뭐가."
"처음에는 불륜 욕하다가 결국 사람 이야기로 돌아오네."
해원이 웃었다.
"원래 그런 거다."
그리고 잠시 뒤.
그가 덧붙였다.
"살인도 그렇고, 배신도 그렇고, 복수도 그렇고. 결국 끝까지 따라가 보면 사람 이야기다."
그날 연구회는 거기서 끝났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오늘의 토론은 끝난 게 아니라 시작이었다.
왜냐하면 다음 질문은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있는 악은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곧 누군가의 현실이 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