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민이 가게를 연 지도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처음 한두 달은 정신이 없었다.
매출이 얼마나 나왔는지.
재료는 얼마나 남았는지.
배달 주문은 몇 건이 들어왔는지.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런데 신기하게 사람은 적응했다.
여전히 힘들었지만.
처음처럼 모든 것이 낯설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재민은 조금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손님 얼굴을 기억하기 시작한 것이다.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오는 중년 남자가 있었다.
나이는 오십대 초반쯤.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았다.
항상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술도 딱 소주 한 병만 마셨다.
혼자 왔다가.
혼자 먹고.
혼자 돌아갔다.
처음에는 몰랐다.
그냥 손님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두 달쯤 지나자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됐다.
어느 화요일이었다.
문이 열리자 재민은 반사적으로 말했다.
"오셨네요."
남자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기억하세요?"
재민은 웃었다.
"매주 같은 시간에 같은 메뉴 드시는데 기억나죠."
남자도 따라 웃었다.
"기분이 이상하네."
"왜요."
"요즘은 어딜 가도 내가 누군지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
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재민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가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날씨 이야기.
야구 이야기.
물가 이야기.
그 정도.
그런데 장사를 하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매일 보는 사람은 아니어도.
정기적으로 얼굴을 보는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손님이 아니라 익숙한 사람이 된다.
"오늘은 늦으셨네요."
"병원 다녀오느라."
"어디 편찮으세요?"
"내가 아니라 어머니."
"많이 안 좋으신가요."
남자는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연세가 있으시니까."
그 말 뒤에는 긴 설명이 없었다.
그런데도 재민은 알아들었다.
몇 주 뒤.
남자는 술을 조금 많이 마셨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재민은 물을 가져다주며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으세요?"
남자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웃었다.
웃었는데.
전혀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사장님."
"예."
"사람이 살다 보면 진짜 죽이고 싶은 놈이 생기더라고."
재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자는 취한 목소리도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담담해서 더 이상했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남자는 소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동생이 사기를 당했어요."
"......"
"전 재산."
재민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했어요. 살아 있으면 된다고. 돈이야 다시 벌면 된다고."
남자는 웃었다.
이번에도 웃는 얼굴은 아니었다.
"근데 사람 마음이 그게 아니더라고."
그는 한참 동안 잔을 바라봤다.
"동생은 우울증 오고. 형수는 집 나가고. 조카는 학교 그만두고. 집안이 다 박살 났는데."
잠시 침묵.
"그 사기꾼은 또 다른 사람 등쳐 먹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남자는 소주잔을 비웠다.
"진짜 죽이고 싶더라고."
재민은 그 말을 들으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뉴스에서는 자주 보던 말이었다.
복수.
분노.
살인 충동.
그런데 화면 속 인터뷰가 아니었다.
인터넷 댓글도 아니었다.
매주 화요일이면 같은 자리에 앉아 소주 한 병을 마시던 사람이었다.
야구 이야기하던 사람.
어머니 병원 이야기하던 사람.
그 사람이.
죽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날 연구회 모임에서 재민은 그 이야기를 꺼냈다.
도윤과 태윤은 처음에는 말이 없었다.
재민도 이해했다.
자신도 처음 들었을 때 바로 대답하지 못했으니까.
잠시 후.
도윤이 조용히 말했다.
"그 사람은 진짜 죽일 생각이 있었을까."
재민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 뒤 말을 이었다.
"근데 그날 처음 느꼈다."
"뭘."
"사람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태윤도 말없이 듣고 있었다.
재민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그런 뉴스 보면 이해가 안 갔거든.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을 죽이냐고."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그 아저씨 이야기 듣고 나니까 처음으로 알겠더라. 죽이고 싶다는 말이 꼭 악한 사람의 말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그날 연구회는 오랜만에 오래 침묵했다.
예전 같으면 살인자를 분석했을 것이다.
왜 죽였는지.
어떤 방법을 썼는지.
무슨 심리였는지.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들이 궁금한 건 살인자가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이 어디까지 몰리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
그게 더 궁금해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도윤은 연구회 노트를 펼쳤다.
한참 동안 빈 페이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적었다.
사람은 원래 악해서 죽이고 싶은 걸까. 아니면 너무 오래 참아서 죽이고 싶어지는 걸까.
이번에는.
아무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