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민 결혼식 날은 날씨가 좋았다.
가을이었다.
덥지도 않았고 춥지도 않았다.
도윤은 식장 입구에서 축의금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다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야."
상대도 그를 발견했다.
잠시 후.
둘 다 웃었다.
"진짜 오랜만이다."
해원이었다.
해원은 예전보다 살이 조금 빠져 있었다.
머리도 짧아졌고 옷차림도 훨씬 깔끔해졌다.
도윤은 해원을 한참 보다가 말했다.
"너는 연락도 잘 안 되고 뭐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다."
해원이 웃었다.
"나도 먹고살아야지.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연애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생각보다 시간이 없더라."
도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 중요한 단어 하나 들은 것 같은데."
"뭐."
"연애."
해원은 웃음을 터뜨렸다.
"왜. 내가 연애하면 안 되냐."
"아니."
도윤도 웃었다.
"그냥 의외라서."
"사실 나도 의외였다."
해원은 솔직하게 말했다.
"예전에는 혼자 있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사람 좋아하게 되니까 생각이 좀 바뀌더라. 원래 나는 연애하면 시간 아까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바쁜데도 만나고 싶고 피곤한데도 얼굴 보고 싶고 그렇더라."
도윤은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사랑꾼이었네."
"그런가 보다."
해원도 웃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끝나고.
사진을 찍고.
식사를 하고.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재민은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말했다.
"야. 진짜 끝났다."
태윤이 웃었다.
"결혼은 이제 시작 아니냐."
"그러니까 그게 문제다."
재민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까지는 축하받는 날인데 내일부터는 돈 나가는 날이다."
모두 웃었다.
그 말이 농담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네 사람은 오랜만에 근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구회 멤버가 한자리에 모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술이 한 잔 들어가고.
또 한 잔 들어가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근황으로 흘러갔다.
태윤은 학교 이야기를 했다.
도윤은 회사 이야기를 했다.
재민은 결혼과 창업 준비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문득.
재민이 말했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사람이 싫을 때가 많다."
해원은 웃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듣고 있었다.
재민은 말을 이어갔다.
"학교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장사도 그렇고 결국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받더라. 뉴스 보면 진짜 별것도 아닌 걸로 서로 죽이네 살리네 하고 싸우고. 요즘은 가끔 왜 사람들이 인간 혐오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태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비슷한 생각은 했다. 학생들보다 어른들이 더 어렵더라."
도윤도 말을 보탰다.
"회사도 그렇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책임질 사람부터 찾는 경우가 많더라."
잠시 정적.
아니.
정확히는 네 사람이 각자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해원이 입을 열었다.
"나는 오히려 반대였는데."
셋의 시선이 해원에게 향했다.
해원은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도 예전에는 사람을 알면 알수록 더 싫어질 줄 알았다. 근데 이상하게 사람을 많이 만나고 연애도 하고 여러 관계를 겪고 나니까 오히려 반대가 되더라."
재민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별로 없더라."
재민은 바로 반박했다.
"뉴스만 봐도 아닌 것 같은데."
"그건 뉴스니까."
해원은 웃으며 말했다.
"뉴스는 원래 이상한 사람이 나오는 곳이잖아."
도윤은 흥미가 생겼다.
"그럼 너는 사람들을 좋게 보게 된 이유가 뭐냐."
해원은 잠시 생각했다.
"좋게 보게 됐다기보다는 이해하게 된 것 같아."
"무슨 차이인데."
"예전에는 누가 무례하게 굴면 그냥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살다 보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
해원은 잠시 술을 마셨다.
"회사에서 잘리고 집에 가는 길일 수도 있고, 부모님 병원비 때문에 정신없는 상태일 수도 있고, 연인하고 헤어진 날일 수도 있고. 물론 그렇다고 무례함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적어도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궁금해지더라."
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이해된다."
"그러니까 나는 요즘 인간 혐오가 잘 안 된다."
해원은 웃었다.
"대신 인간 실망은 자주 한다."
그 말에 모두 웃었다.
재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근데 그 논리면 결국 아무도 욕할 수 없는 거 아니냐."
"아니."
해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또 다른 이야기지."
"왜."
"이해와 책임은 다른 문제니까."
해원은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이해하려고 한다. 근데 그렇다고 그 행동의 책임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도윤은 그 말을 듣고 노트에 적어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와 책임은 다른 문제.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술이 꽤 들어갔을 무렵.
재민이 문득 물었다.
"해원아."
"응."
"너는 살면서 진짜 사람 죽이고 싶었던 적 없냐."
예전 연구회라면 웃으며 넘어갔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네 사람 모두.
세상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해원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예상보다 긴 대답을 했다.
"있었지."
셋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다음 말이 궁금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그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보다 내가 그 사람 때문에 계속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싫더라.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복수보다 잊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술집이 잠시 조용해졌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날 연구회는 오랜만에 본론으로 돌아왔다.
결혼.
직장.
학교.
창업.
그 모든 이야기 끝에는 결국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는 것과.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모두의 머릿속에 남았다.
도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해원은 예전보다 많이 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해원다운 대답을 한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연구회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