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이 취업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대기업은 아니었다.
누가 들으면 이름 정도는 아는 회사였고, 누가 들으면 거기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의 회사였다.
도윤은 만족했다.
적어도 이제는 학생이 아니었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월급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도 안 돼서 깨달았다.
회사도 결국 사람이 모인 곳이라는 걸.
재민도 바빴다.
결혼 준비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예식장.
신혼집.
대출.
가전.
양가 부모님.
좋은 날을 잡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체크리스트를 지우기 위한 프로젝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태윤도 학교에 발령이 났다.
아직 서툴렀지만 학생들을 만나는 건 생각보다 즐거웠다.
다만.
학생보다 어려운 건 어른들이라는 생각은 여전했다.
오랜만에 셋이 만난 날이었다.
재민은 앉자마자 한숨부터 쉬었다.
"요즘 진짜 사람 상대하기 싫다."
도윤이 웃었다.
"또 무슨 일 있었냐."
"내 일은 아니고."
재민은 휴대폰을 꺼냈다.
"이거 봐라."
휴대폰 화면에는 뉴스 기사가 떠 있었다.
자영업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였다.
원인은 악성 리뷰.
정확히 말하면 몇 달 동안 이어진 악성 리뷰와 별점 테러였다.
태윤이 기사를 읽었다.
도윤도 읽었다.
내용은 단순했다.
가게 음식은 먹지도 않았는데 별점 1점을 남긴 사람.
환불을 안 해준다고 악성 리뷰를 수십 개 남긴 사람.
지인들까지 동원해서 평점을 떨어뜨린 사람.
그게 반복됐다.
매출은 떨어졌다.
손님은 줄었다.
결국 가게는 문을 닫았다.
잠시 침묵.
이번에는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재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리뷰가 소비자의 권리라고만 생각했거든."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근데 요즘은 아닌 것 같다."
재민은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별점 하나가 사람 인생을 망칠 수도 있더라."
태윤이 말했다.
"근데 또 진짜 별로인 가게는 리뷰가 필요하잖아."
"맞지."
"그러면 어디까지가 정당한 리뷰고 어디부터가 공격인 걸까."
도윤은 그 질문이 좋다고 생각했다.
요즘 연구회는 이런 식이었다.
누가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어디까지가 선인가를 묻는다.
재민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리뷰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 안 한다."
"그럼."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게 문제인 것 같다."
도윤은 관심이 생겼다.
"설명해 봐."
"예를 들어 별점 하나 남길 때."
재민은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그냥 기분 나빠서 남겼을 수도 있잖아."
"그럴 수 있지."
"근데 가게 입장에서는 그 별점 하나가 월세고 직원 월급이고 생활비일 수도 있는 거지."
태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되는 말이었다.
도윤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근데 그 사람도 자기 입장에서는 억울했을 수도 있지 않냐."
재민은 웃었다.
"맞다."
"그럼 결국 또 사람 문제네."
"그러니까."
재민은 씁쓸하게 웃었다.
"요즘 들어 진짜 자주 하는 생각인데 사람들은 자기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모르고 사는 것 같다."
태윤도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학교도 비슷하다."
두 사람이 태윤을 바라봤다.
"학부모 민원 하나 들어오면 선생들은 몇 날 며칠을 신경 쓴다. 근데 민원 넣은 사람은 그냥 화가 나서 넣었을 수도 있거든."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물론 필요한 민원도 있다. 문제는 자기 감정을 풀기 위해 쓰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지."
도윤은 문득 회사가 떠올랐다.
상사가 던진 한마디.
동료가 무심코 한 한마디.
그 말들이 의외로 오래 남는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다.
"결국."
도윤이 천천히 말했다.
"사람은 자기가 남긴 흔적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댓글 하나."
"리뷰 하나."
"민원 하나."
"욕 한마디."
태윤도 말을 이었다.
"농담 하나."
잠시 정적.
아니.
생각하는 시간.
재민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응."
"저 기사 보니까 처음으로 이해가 가더라."
도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재민은 말을 이어갔다.
"뉴스 보면 가끔 왜 저렇게까지 화를 내지 싶은 사건들 있었잖아."
"응."
"근데 내 가게라고 생각해 보니까."
잠시 말을 멈췄다.
"진짜 찾아가서 멱살 잡고 싶을 것 같더라."
태윤도.
도윤도.
그 말에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옳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해는 갔다.
그 차이가 점점 무서워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해되지 않던 분노가.
요즘은 이해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도윤은 연구회 노트를 펼쳤다.
예전에는 살인자가 궁금했다.
지금은.
평범한 사람이 언제 살인 충동을 느끼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 둘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두려워지고 있었다.
도윤은 마지막으로 한 줄을 적었다.
사람은 얼마나 쉽게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밀 수 있는가.
이번에는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