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회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미래는 굉장히 멀리 있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도 먼 이야기였고.
군대도 먼 이야기였고.
취업도 먼 이야기였고.
결혼은 더 먼 이야기였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들 어느새 그 이야기들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날 모임은 오랜만에 네 명이 아닌 세 명이었다.
아니.
원래부터 세 명이었다.
도윤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연구회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모임이었다면 지금은 살아남기 위한 모임에 가까워진 것 같았다.
재민이 먼저 술잔을 들었다.
"나 결혼 날짜 잡았다."
도윤이 눈을 깜빡였다.
태윤은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언제."
"올해 안."
재민은 담담하게 말했다.
"어차피 서로 오래 끌 생각도 없었고, 나도 원래 결혼은 빨리 하고 싶었어."
도윤은 잠시 웃었다.
"진짜 가는구나."
"그러게."
재민도 웃었다.
"나도 아직 실감은 안 난다."
잠시 침묵.
그리고 재민은 말을 이었다.
"근데 결혼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뭔데."
"돈."
셋이 동시에 웃었다.
"진짜다."
재민은 진지했다.
"결혼식 비용도 비용인데 집도 알아봐야 하고, 대출도 알아봐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도 계산해야 한다. 예전에는 그냥 좋아하면 만나고 헤어지면 헤어지는 거였는데 이제는 그런 문제가 아니더라."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책임질 사람이 생기면 달라지는 것 같긴 하다."
재민은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요즘 가게를 더 빨리 차리고 싶어."
태윤이 물었다.
"준비는 되고 있고?"
"조금씩."
재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장사 잘되면 돈 많이 버는 줄만 알았는데, 요즘은 사장들이 왜 그렇게 예민한지 조금 알 것 같다. 직원 월급도 줘야 하고 임대료도 내야 하고, 잘못하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 인생도 같이 흔들리는 거잖아."
그 말에 태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책임.
요즘 들어 자주 나오는 단어였다.
도윤이 물었다.
"근데 너는 이제 진짜 선생 되는 거냐."
태윤은 잠시 웃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닌데 거의 그렇게 될 것 같다."
"기분이 어떠냐."
"솔직히 말하면 반반이다."
태윤은 잠시 말을 고르더니 천천히 이어갔다.
"예전에는 교사가 되면 학생들만 보면 되는 줄 알았다. 근데 교생 나가 보니까 학생보다 어른들이 더 어렵더라."
재민이 웃었다.
"벌써부터 학부모 무섭냐."
"무섭다기보다는..."
태윤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사람들이 점점 자기 자식 일에는 객관적이지 못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더라."
"그건 원래 그런 거 아니냐."
"그럴 수도 있는데, 가끔은 선생이 아니라 서비스직처럼 대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잠시 정적이 아니라 생각이 이어졌다.
도윤이 먼저 말했다.
"근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 아닐까."
두 사람이 도윤을 바라봤다.
도윤은 말을 이어갔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기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잖아. 문제는 그게 다른 사람 자식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랑 충돌할 때겠지."
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나도 그 생각은 했다."
잠시 후.
재민이 말했다.
"근데 해원은 뭐 하고 사냐."
도윤이 웃었다.
"갑자기?"
"아니. 그냥 생각났다."
태윤도 피식 웃었다.
"저번에 통화는 했다."
"뭐래."
"또 어디 지방 내려갔다더라."
"걔는 진짜 신기하다."
재민은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맨날 없는데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
도윤도 웃었다.
그 말이 딱 맞았다.
연구회를 제일 열심히 나온 적도 없고.
항상 같이 있던 사람도 아니고.
가끔 연락도 끊겼다.
그런데 이상하게 완전히 잊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술이 조금 더 들어가자 이번에는 도윤 이야기가 나왔다.
재민이 물었다.
"너는 취업은 어떻게 돼 가냐."
도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면접도 보고 있고 알아보고는 있는데, 요즘은 취업이 문제가 아니라 들어간 뒤가 더 걱정이다."
"왜."
"예전에는 회사 가면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거든."
도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근데 실제로 다녀본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일보다 사람이 더 문제더라."
태윤이 웃었다.
"결국 또 사람이네."
"그러게."
도윤도 따라 웃었다.
"신기하게 어디를 가도 마지막에는 사람 이야기로 끝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니.
정확히는 각자 생각하는 시간이 흘렀다.
예전 같으면 미래가 궁금했다.
지금은 미래가 눈앞에 있었다.
결혼.
직장.
교사.
창업.
전부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재민이 술잔을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있다."
"뭔데."
"우리가 아직 이렇게 만나고 있다는 거."
태윤은 웃었다.
"갑자기 감성적이네."
"아니 진짜."
재민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전에는 서른쯤 되면 다 어른일 줄 알았거든. 근데 막상 와 보니까 아직도 모르겠는 게 많다."
도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이었다.
세 사람 모두 각자의 자리를 향해 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답을 모르는 질문들도 많았다.
다만 하나는 예전과 달랐다.
이제는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답이 없더라도.
각자 자기 방식대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연구회가 여기까지 이어진 이유로는 충분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