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 돌아온 뒤에도 단체방은 한동안 조용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여행 끝나고 사진 몇 장 올리고 끝났을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여섯 명이 함께 있는 단체방이 하나 생겼고, 가끔 누군가 사진을 올리거나 안부를 묻거나 퇴근길에 투덜거리는 이야기를 남겼다.
재민은 처음 며칠 동안 유독 열심히 반응했다.
도윤은 그걸 보며 웃었다.
"너 요즘 단체방 출석률이 너무 높은 거 아니냐."
재민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데 반응할 수도 있지."
"반응이 문제가 아니라 거의 상주하고 있더라."
태윤도 웃었다.
"출근 도장 찍는 수준이긴 하다."
재민은 소주잔을 들었다.
"너희는 안 궁금하냐."
도윤은 피식 웃었다.
"뭐가."
"사람들."
"또 시작이다."
그날도 셋은 술집에 앉아 있었다.
다만 예전과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이제는 꼭 무거운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사회 이야기 하다가도 다른 이야기로 새고, 진지한 이야기 하다가도 농담이 끼어들었다.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러웠다.
재민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근데 신기하긴 하더라."
"뭐가."
"우리는 뉴스로만 보던 이야기를 실제 사람 입으로 들은 거잖아."
도윤은 바로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었다.
강릉에서 만난 여자들이 했던 이야기였다.
데이트 폭력.
몰래카메라.
밤길.
스토킹.
그런 이야기들.
도윤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사실 나는 좀 충격이긴 했다."
"뭐가."
"나는 솔직히 그런 걸 크게 의식하고 살진 않았거든. 근데 누군가는 밤에 혼자 집에 가는 것도 걱정하고, 누군가는 연애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무섭다고 생각한다는 게."
태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비슷했다."
재민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나는 오히려 반대였어."
"뭐가."
"남자들도 무섭거든."
도윤이 웃었다.
"갑자기?"
재민은 진지했다.
"아니 진짜. 여자들은 범죄가 무서울 수 있는데, 남자들은 실패가 무서울 때가 있잖아."
태윤은 그 말에 관심을 보였다.
"실패?"
"응."
재민은 잠시 말을 고르더니 이어갔다.
"예를 들어 사업 망하는 거. 대출 못 갚는 거. 가족 책임 못 지는 거. 결혼했는데 무너지는 거."
잠시 정적.
"결국 종류만 다를 뿐 다들 무서운 게 있는 것 같더라."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 같다."
태윤도 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다 불안을 안고 사는 것 같아. 근데 자기 불안이 제일 크게 보이는 거지."
재민은 피식 웃었다.
"그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뭐가."
"사람은 자기 이야기밖에 모른다는 거."
도윤도 웃었다.
그건 최근 연구회가 계속 붙잡고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사람은 왜 자기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가.
왜 자기 상처는 크게 느끼고 남의 상처는 잘 보지 못하는가.
그때 재민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잠깐 확인한 재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도윤은 바로 눈치챘다.
"누구냐."
"뭐가."
"표정."
재민은 애써 태연한 척했다.
"아무것도 아닌데."
태윤이 피식 웃었다.
"여자친구?"
"응."
도윤은 한숨을 쉬었다.
"사람 이야기 좋아하는 척하더니 결국 여자친구였네."
재민은 웃었다.
"아니, 그건 다른 문제지."
"뭐가 달라."
"사람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사람이잖아."
"와."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결혼 준비하는 사람은 다르네."
잠시 웃음이 오갔다.
그런데 태윤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도윤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근데 너는 왜 말이 없냐."
"뭐가."
"강릉 갔다 온 뒤부터 이상하게 휴대폰을 자주 보더라."
태윤은 순간 맥주를 마시다 사레가 들릴 뻔했다.
재민의 눈이 커졌다.
"설마."
"아니다."
"아닌 사람은 그렇게 대답 안 한다."
"진짜 아니다."
"누구냐."
태윤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잠시 뒤.
재민이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면 신기하다."
"뭐가."
"우리는 바닷가 가서 헌팅이나 해보자고 갔는데 결국 사람 이야기만 하다 왔잖아."
도윤도 웃었다.
"그러게."
"예전 같았으면 번호 따고 못 따고 그런 것만 이야기했을 텐데."
태윤은 잔을 들며 말했다.
"이제는 그것보다 사람이 더 궁금한 나이가 된 거겠지."
재민은 곧바로 반박했다.
"아니다."
"뭐가."
"예쁜 사람도 여전히 궁금하다."
셋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집으로 돌아온 뒤.
도윤은 문득 강릉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연애가 무섭다는 사람.
밤길이 무섭다는 사람.
실패가 무섭다는 사람.
책임이 무섭다는 사람.
생각해 보면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생각보다 그 사람을 많이 바꾼다.
도윤은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짧게 적었다.
사람은 무엇을 두려워할 때 가장 많이 변하는가.
이번에는 답보다 경험이 먼저 필요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