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모임은 재민이 먼저 꺼냈다.
"너희 며칠 전에 그 사건 봤냐."
도윤이 물었다.
"무슨 사건."
"뉴스에 나온 거."
재민은 휴대폰을 꺼내 기사를 보여줬다.
몇 년 전 학교폭력을 당했던 남성이 가해자를 찾아가 폭행했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친 건 아니었지만 기사 댓글은 둘로 갈라져 있었다.
한쪽은.
속이 시원하다.
였고.
다른 한쪽은.
그래도 폭력은 안 된다.
였다.
태윤이 기사를 읽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댓글 예상 그대로네."
도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사건은 항상 그렇더라."
재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
"근데 나는 솔직히 말하면 좀 헷갈린다."
"뭐가."
"예전에는 무조건 폭력은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이제는 꼭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도윤이 물었다.
"왜."
재민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예를 들어 누가 너를 3년 동안 괴롭혔어. 학교도 망치고 인간관계도 망치고 인생도 망쳤어. 그런데 졸업하고 나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 살고 있어."
태윤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십 년 뒤에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어. 오히려 기억도 못 해."
잠시 정적.
재민은 잔을 내려놓았다.
"그럼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도윤은 곧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그래도 폭력은 안 되지.
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대답이 얼마나 쉬운 대답인지 알고 있었다.
도윤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모르겠다."
재민이 피식 웃었다.
"의외네."
"아니."
도윤도 웃었다.
"폭력이 정당하다는 말은 아닌데, 피해자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이해가 되니까."
태윤이 끼어들었다.
"근데 나는 다른 생각이 드는데."
"뭔데."
"복수가 끝낼 수 있는 문제인가."
재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야."
태윤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만약 진짜 찾아가서 때렸다고 치자. 그럼 그 사람이 잃어버린 학창 시절이 돌아오나."
"그건 아니지."
"자존감이 돌아오나."
"그것도 아니고."
"그럼 뭐가 해결되는 거지."
잠시 침묵.
태윤은 잔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가끔 사람들이 복수를 정의라고 착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재민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왜."
"복수가 정의는 아닐 수 있어. 근데 피해자 입장에서는 정의보다 복수가 더 중요할 수도 있잖아."
도윤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재민은 평소보다 진지했다.
"생각해 봐. 어떤 사람은 법원 판결보다 사과 한마디를 원할 수도 있어. 근데 사과를 안 해. 반성도 안 해. 그러면 남는 건 분노밖에 없잖아."
태윤은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그 말도 틀린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잠시 말없이 술을 마시던 도윤이 입을 열었다.
"근데 나는 오히려 그게 무섭다."
"뭐가."
"복수가 아니라."
도윤은 창밖을 바라봤다.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거."
재민과 태윤은 말없이 들었다.
"학교폭력 가해자도 자기 입장이 있고, 복수하는 피해자도 자기 입장이 있고, 결국 사람은 자기가 왜 그랬는지 설명할 수는 있거든."
도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근데 설명할 수 있다는 거랑 정당하다는 건 다르잖아."
재민이 웃었다.
"오늘은 네 말이 제일 무섭네."
"왜."
"그 논리면 결국 누구도 자기를 악인이라고 생각 안 한다는 이야기잖아."
잠시 정적.
도윤도 웃었다.
"원래 그렇지 않나."
"그렇지."
태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도 인터뷰 보면 다 이유는 있더라."
"그러니까."
도윤은 술잔을 들었다.
"나는 가끔 그게 제일 궁금해."
"뭐가."
"사람은 어디까지 자기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걸까."
재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면 반대로 질문해 보자."
"뭔데."
"너희는 정말 살면서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적 없냐."
이번에는 누구도 웃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농담으로 넘겼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살다 보니.
이해되지 않던 감정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꼭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도윤은 연구회 노트를 펼쳤다.
오늘은 결론이 없었다.
누가 맞는지도 모르겠고.
누가 틀린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상처받고.
생각보다 오래 기억하며.
생각보다 쉽게 용서하지 못한다.
도윤은 마지막으로 한 줄을 적었다.
복수는 상처를 끝내는가.
아니면 상처를 이어가는가.
답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군가 반드시 선택해야 할 질문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