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모임은 원래 없었다.
그런데 태윤이 먼저 연락을 했다.
태윤: 오늘 저녁에 시간 되는 사람 있냐.
재민: 무슨 일인데.
태윤: 그냥 얼굴 좀 보자.
도윤: 너가 먼저 보자는 거면 뭔 일 있네.
태윤: 와서 이야기할게.
셋이 만난 건 학교 근처 호프집이었다.
태윤은 평소보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도윤이 먼저 물었다.
"무슨 일 있었냐."
태윤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교생 실습하면서 좀 이해 안 되는 걸 봤다."
재민이 웃었다.
"학부모?"
"아니."
태윤은 고개를 저었다.
"선생."
잠시 정적.
"무슨 일이었는데."
도윤이 물었다.
태윤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어떤 학생이 있었어. 공부를 잘하는 애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제아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애였는데 담임 선생이 유독 그 애를 싫어하더라."
재민이 물었다.
"왜?"
"나도 그게 궁금해서 물어봤어."
태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더 이상하더라."
"뭐라고 했는데."
"요즘 애들은 저 정도는 혼나야 된다고."
도윤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태윤은 말을 이어갔다.
"근데 내가 봤을 때는 혼내는 수준이 아니었어. 수업 시간에 일부러 대답시키고, 조금만 틀려도 비꼬고, 다른 애들 앞에서 면박 주고. 그런 게 계속 반복되더라."
"학생은?"
"그냥 가만히 있더라."
잠시 침묵.
태윤은 맥주잔을 돌리며 말했다.
"그래서 나중에 조심스럽게 물어봤어. 왜 그렇게까지 하시냐고."
"그랬더니?"
"자기도 학창 시절에 선생들한테 그렇게 배웠대."
재민은 피식 웃었다.
"그게 이유냐."
"그러니까."
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도 당했으니까 저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야."
도윤은 문득 군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말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태윤도 바로 알아들었다.
"군대."
"응."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에서도 맨날 그러잖아. 나도 이등병 때 당했다. 나도 맞았다. 나도 갈굼당했다."
재민도 말했다.
"장사도 비슷해. 내가 막내 때는 더 심했다. 내가 알바 때는 더 힘들었다. 그런 이야기 엄청 많다."
잠시 정적.
도윤은 잔을 내려놓았다.
"근데 이상하지 않냐."
"뭐가."
"당해서 싫었던 일을 왜 똑같이 하는 거지."
태윤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는 예전에는 이해가 안 됐는데 요즘은 조금 알 것도 같아."
재민이 물었다.
"뭐가."
"사람은 자기가 당한 고통을 의미 없는 걸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도윤과 재민은 잠시 생각했다.
태윤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괴롭힘을 당했어. 근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아무 의미도 없었고 그냥 괴롭힘이었어. 그러면 너무 억울하잖아."
"그렇지."
"근데 반대로 생각하면 편해."
태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내가 성장했다.'"
"'그래도 저 정도는 필요하다.'"
"'나도 당했으니까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기가 받았던 고통도 정당화되거든."
이번에는 재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다."
도윤은 반대로 생각했다.
"근데 그건 좀 위험한 생각 아니냐."
"왜."
"그 논리면 폭력도 계속 이어지잖아."
도윤은 말을 이어갔다.
"누가 맞고 자랐다고 해서 자식도 때리면 되고, 누가 괴롭힘 당했다고 해서 후배도 괴롭히면 되고. 결국 끝이 없잖아."
태윤도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본인도 확신은 없었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재민이 문득 물었다.
"그러면 반대로."
"뭐가."
"진짜 억울하게 당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냐."
도윤이 쳐다봤다.
재민은 진지했다.
"예를 들어 누가 내 인생을 망쳤어. 근데 사과도 안 해. 반성도 안 해. 법도 별로 도움 안 돼."
잠시 정적.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재민은 소주를 한 모금 마셨다.
"뉴스 보면 그런 사람들 있잖아. 사기당해서 전 재산 날리고, 학교폭력 당하고, 음주운전에 가족 잃고."
도윤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그 사람들 인터뷰 보면 가끔 이해 안 되는 말이 있어."
"뭔데."
"죽이고 싶었다."
재민은 창밖을 바라봤다.
"예전에는 그 말이 이해가 안 됐거든."
잠시 침묵.
"근데 요즘은 가끔 이해가 된다."
술자리가 끝난 뒤.
도윤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연구회 노트를 펼쳤다.
오늘은 이상하게 태윤의 이야기보다 재민의 마지막 말이 더 오래 남았다.
당했으니까.
그 네 글자.
사람들은 왜 그렇게 쉽게 그 말을 하는 걸까.
그리고.
당한 사람은 왜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는 걸까.
도윤은 노트에 질문을 적었다.
고통은 사람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가.
아니면.
더 닮게 만드는가.
이번에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어려운 질문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