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요?"
예나는 꽤 놀란 표정이었다.
"왜요?"
해원이 웃었다.
"안 볼 것 같았어요?"
"조금요."
"왜요."
예나는 해원을 한번 바라봤다.
작업복.
두꺼운 팔.
햇볕에 그을린 피부.
그리고 계속 무언가를 적고 있는 모습.
솔직히 말하면.
네이트판을 읽는 사람보다는 헬스장 관장님 같은 느낌에 가까웠다.
"그냥 안 볼 것 같았어요."
"그게 무슨 기준입니까."
"몰라요."
예나가 웃었다.
"근데 진짜 안 볼 것 같았어요."
해원도 웃었다.
"많이 봅니다."
"댓글도요?"
"댓글이 더 재밌죠."
"맞아요!"
예나가 바로 공감했다.
"저도 댓글 보는 게 더 재밌어요."
그 말이 시작이었다.
이상하게도 대화가 끊기지 않았다.
원래 처음 보는 사람과는 대화가 어색하기 마련인데.
예나는 질문이 많았고.
해원은 이야기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근데 기업이사는 어떻게 하게 되신 거예요?"
"먹고 살려고요."
"아니 진지하게요."
"진지하게도 먹고 살려고 한 건 맞습니다."
예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부터 그런 일 하셨어요?"
"아니요."
"그럼?"
"이것저것 했죠."
"예를 들면?"
"말하면 길어요."
"저는 긴 얘기 좋아하는데."
"큰일 났네."
"왜요?"
"저도 긴 얘기 좋아합니다."
둘 다 웃었다.
해원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생각했다.
신기한 사람이네.
가까이서 보니 더 그랬다.
키는 큰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작아 보이지도 않았다.
얼굴이 작은 편이었고 다리가 길었다.
그래서 실제 키보다 조금 더 커 보였다.
단발머리는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요즘은 긴 머리를 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그리고 웃을 때 인상이 참 밝았다.
억지로 만드는 서비스용 웃음이 아니라.
정말 즐거워서 웃는 사람의 웃음이었다.
검은 앞치마 아래로 보이는 옷도 단정했다.
목 부분이 조금 넓게 파여 있었는데.
덕분에 쇄골선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었다.
해원은 원래 그런 부분을 보는 편이었다.
사람마다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는데.
해원에게는 손일 때도 있었고.
눈일 때도 있었고.
가끔은 쇄골일 때도 있었다.
예쁜 사람이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다만.
지금 더 신기한 건 외모가 아니라 대화였다.
"근데 글은 왜 쓰세요?"
예나가 물었다.
"글이요?"
"아까부터 사람 이야기 적는다고 하셨잖아요."
해원은 잠시 생각했다.
"사람이 재밌어서요."
"뭐가 재밌는데요?"
"다들 다르게 사는 것 같은데 결국 비슷하게 살거든요."
예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결국 사랑받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외롭고."
"후회하고."
"또 같은 실수하고."
예나가 피식 웃었다.
"그건 진짜 맞는 것 같아요."
그때였다.
"예나야."
카운터에서 사장 목소리가 들렸다.
"네?"
"너 오늘 대화 알바 나왔냐?"
예나는 순간 굳었다.
"아닌데요."
"손님보다 말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도윤이 바로 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누나 너무 정확한데."
예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손님 없잖아요."
"손님 없으면 컵이라도 닦아."
"아까 닦았어요."
"그럼 냉장고 채워."
"채웠어요."
"그럼 테이블 닦아."
"그것도 했어요."
사장이 결국 웃었다.
"그럼 일하는 척이라도 해."
"알겠습니다..."
예나는 민망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원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잠시 뒤.
예나는 컵을 정리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손님 계산도 했다.
테이블도 한번 더 닦았다.
그리고.
5분쯤 지나자.
"아까 무슨 얘기했죠?"
하고 다시 돌아왔다.
해원은 결국 웃었다.
"일하러 가신 거 아니었습니까."
"했잖아요."
"벌써요?"
"성실합니다."
"그건 인정."
둘 다 웃었다.
그날 둘은 가게 문 닫을 시간 가까이까지 이야기했다.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사람 유형.
최근에 본 커뮤니티 사연.
읽었던 글.
살면서 만난 이상한 사람들.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해원은 창밖을 바라봤다.
예쁜 사람이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계속 생각나는 건 외모보다 대화였다.
처음 보는 사람과 세 시간 가까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며칠 뒤.
퇴근 후.
해원은 별 생각 없이 맥주나 한잔할까 생각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 가게 앞에 서 있었다.
문을 열자.
예나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어?"
"왜요?"
"오늘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왜요?"
"그냥 바쁘실 것 같아서."
그 말이 이상하게 좋았다.
그날도 둘은 한참 이야기했다.
그리고 또 며칠 뒤.
해원은 다시 그 가게를 찾았다.
이번에는 핑계도 없었다.
맥주가 마시고 싶었던 건 맞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