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셋이 모인 날이었다.
예전에는 만나면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몇 시간씩 웃고 떠들 수 있었다.
그런데 스물여섯이 되고 나니 이상하게도 약속을 잡는 것부터가 일이 되었다.
재민은 가게 문을 닫아야 했고,
태윤은 임용시험 준비와 교생 실습 일정에 맞춰야 했고,
도윤 역시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셋 다 자리에 앉자마자 같은 생각을 했다.
아, 진짜 오랜만이다.
술이 두어 잔 들어간 뒤였다.
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교생 실습 나가기 전에는 솔직히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수업 준비하고 학생들 가르치고 시험 문제 내고 상담해 주는 정도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막상 학교 안에 들어가 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직업이더라."
도윤이 물었다.
"어떤 점이 가장 그랬는데?"
태윤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는 학생들 때문에 힘들 줄 알았어. 솔직히 말하면 중학생, 고등학생 애들이 워낙 에너지도 넘치고 사고도 많이 치니까
그게 제일 힘든 부분일 줄 알았거든.
그런데 막상 실습을 나가 보니까 선생님들이 학생보다 학부모 전화를 더 부담스러워하더라."
재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야?"
"생각보다 훨씬 심해."
태윤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어떤 학생이 친구랑 싸웠다고 전화가 오고, 수행평가 점수가 왜 이렇게 나왔냐고 전화가 오고, 체육 시간에 다쳤다고 전화가 오고, 심지어는 아이가 학교에서 기분이 안 좋았다고 전화하는 경우도 있더라.
물론 부모 입장에서는 자기 자식이니까 이해는 되는데, 하루 종일 그런 전화를 받고 있으면 수업 준비할 시간도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잠시 말을 멈춘 태윤이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 가 보니까 학생을 가르치는 일 말고도 감당해야 할 게 너무 많더라.
솔직히 말하면 처음으로 겁이 났어.
내가 정말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도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들으니까 나도 생각나는 게 있다."
재민이 물었다.
"무슨 일?"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있었던 일인데."
도윤은 잠시 기억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회사라는 곳이 되게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어.
누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다 정해져 있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사람도 명확할 줄 알았거든.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
"어떻게?"
"어떤 날은 내가 한 실수가 아닌데도 내가 사과를 해야 하고,
어떤 날은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인데도 고객한테 설명을 해야 하고,
어떤 날은 위에서 내려온 지시 때문에 욕을 먹는데 정작 그 지시를 내린 사람은 안 보이는 경우도 있었어."
재민은 피식 웃었다.
"사회생활 시작했네."
도윤도 웃었다.
"나도 처음에는 억울했지.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까 재미있는 게 보이더라.
나한테 일을 넘기는 사람도 자기 위에서 압박을 받고 있었고,
그 위 사람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압박을 받고 있었어.
결국 다들 자기 자리에서 힘들어하고 있는데 그 힘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는 거더라."
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진짜 학교도 똑같다."
"그래?"
"응. 교사들도 힘들어하고, 교감도 힘들어하고, 교장도 힘들어하고.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것 같더라."
한참 동안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재민이 술잔을 내려놓았다.
"나는 좀 다른 걸 느꼈다."
도윤이 물었다.
"뭔데?"
재민은 창밖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가게를 하다 보면 혼자 오는 손님들이 생각보다 많거든.
처음에는 그냥 혼자 밥 먹으러 오는 줄 알았어.
그런데 몇 년 동안 보다 보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더라."
"무슨 뜻이야?"
"어떤 사람들은 주문보다 말을 더 많이 해."
재민은 씁쓸하게 웃었다.
"사장님은 안 계시냐고 물어보면서 한참 이야기를 하고, 오늘 장사는 어떠냐고 묻다가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다고
자기 이야기까지 꺼내고, 날씨가 너무 덥다면서 한참을 서 있다 가는 사람도 있어.
처음에는 솔직히 귀찮았어.
바쁜데 왜 자꾸 말을 거나 싶었거든.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사람들은 밥을 먹으러 오는 게 아니라 잠깐이라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러 오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돈이 없는 사람들도 아니고, 특별히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도 아닌데
이상하게 외로워 보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도윤과 태윤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재민은 잔을 들며 말을 이었다.
"어릴 때는 외롭다는 게 친구 없는 사람들 이야기인 줄 알았어.
그런데 나이 먹고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결혼한 사람도 외롭고, 직장이 있는 사람도 외롭고,
돈이 많은 사람도 외로운 것 같아."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고깃집 안은 시끄러웠다.
회식을 하는 직장인들이 웃고 있었고, 맞은편 테이블에서는 연인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도윤이 조용히 말했다.
"이상하다."
"뭐가?"
태윤이 물었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모든 걸 알게 될 줄 알았거든.
그런데 막상 나이를 먹어 보니까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재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돈 벌면 끝인 줄 알았어."
태윤도 따라 웃었다.
"나는 선생님만 되면 되는 줄 알았고."
도윤은 빈 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답이 생기는 게 아니라 질문이 늘어나는 것 같다."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셋 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
도윤은 오랜만에 연구회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천천히 적었다.
왜 사람은 사람 때문에 상처받을까.
한참 동안 생각한 뒤.
그 아래에 다시 적었다.
그런데 왜 사람은 결국 사람을 찾게 될까.
이번 질문은 이상하게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오래 붙잡게 될 질문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