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이 되자 셋이 만나서 하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게임 이야기를 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 이야기와 군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제는 만나면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그게 좀 어색했다.
스스로도 아직 어른이 된 것 같지 않았는데, 대화 내용은 점점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와 비슷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랬다.
재민은 가게 마감을 하고 왔고, 태윤은 임용시험 준비를 마치고 왔다. 도윤 역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온 참이었다.
고깃집에 앉아 소주 한 병을 비웠을 때쯤, 평소보다 말이 적던 재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
태윤이 웃었다.
"너 또 무슨 생각하는데."
"가게에 단골손님 한 분이 계시거든. 내가 일 시작할 때부터 봤으니까 거의 3년 가까이 본 셈이지."
도윤은 고기를 뒤집으며 물었다.
"무슨 사람인데."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
재민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듯 말을 이었다.
"건물도 있고, 회사도 있고, 직원도 몇 명 데리고 있고, 차도 좋은 거 타고 다녀. 처음에는 나도 부러웠어. 저 정도면 걱정 없이 살겠구나 싶었지."
"그런데?"
도윤이 물었다.
재민은 소주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그런데 3년 동안 한 번도 행복해 보인 적이 없더라."
태윤이 피식 웃었다.
"그건 네가 너무 단정하는 거 아니냐."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사람이라는 게 오래 보다 보면 조금 보이잖아. 그 사람은 올 때마다 화가 나 있어. 어떤 날은 직원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고, 어떤 날은 거래처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하고, 또 어떤 날은 정부 정책 때문에 사업하기 힘들다고 하고. 가끔은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냐고 혼자 화를 내기도 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재민은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돈만 많으면 행복할 줄 알았거든. 그런데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더라."
도윤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직장인들 때문이었다.
"나도 얼마 전에 같이 일하는 대리님이랑 커피 한 잔 마신 적이 있었어."
태윤이 물었다.
"어땠는데."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야기하다 보니까 생각보다 고민이 많더라고."
도윤은 그날을 떠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냐고 물었거든. 그랬더니 웃으면서 그러더라. 솔직히 회사 가기 싫은 날이 훨씬 많다고."
재민이 웃었다.
"다들 똑같네."
"근데 그 다음 말이 좀 기억에 남았어."
도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
"자기는 회사를 좋아해서 다니는 게 아니라는 거야. 애들 학원비도 내야 하고, 집 대출도 갚아야 하고, 부모님 병원비도 챙겨야 하고. 자기가 힘들다고 출근을 안 하면 그 책임은 그대로 가족들한테 간다는 거지."
태윤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도윤은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 이야기 듣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나더라."
"왜."
"어릴 때는 왜 그렇게 피곤해 보이는지 몰랐거든. 쉬는 날에도 걱정이 많았고. 근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더라."
태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이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
"어떤?"
"사람들은 목표를 이루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한대. 대학에 들어가면 행복할 것 같고, 취업하면 행복할 것 같고,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고."
재민이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네."
"근데 문제는 목표를 이루고 나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긴다는 거야."
태윤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임용고시 준비하는 사람들은 합격만 하면 모든 고민이 끝날 것처럼 이야기하거든. 그런데 막상 현직 교사들 이야기 들어보면 또 다른 걱정이 시작되더라."
"예를 들면?"
"학생들 문제도 있고, 학부모 문제도 있고, 승진 문제도 있고. 결국 사람은 한 가지 걱정이 끝나면 또 다른 걱정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
재민이 피식 웃었다.
"그럼 답이 없는 거네."
"그런 셈이지."
태윤도 따라 웃었다.
한동안 셋은 말없이 잔을 비웠다.
고깃집 안은 시끄러웠다.
옆 테이블에서는 회식을 하는 직장인들이 떠들고 있었고, 맞은편에서는 대학생들로 보이는 커플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윤은 문득 그 사람들을 바라봤다.
다들 웃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고민이 있을 것이다.
취업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결혼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돈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라는 건 도착하는 장소가 아니라 지나가는 순간에 가까운 건 아닐까.
집으로 돌아온 뒤.
도윤은 오랜만에 연구회 노트를 펼쳤다.
중학생 때는 범죄자가 궁금했다.
고등학생 때는 법이 궁금했다.
대학교에 와서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른 질문이 생기고 있었다.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도윤은 천천히 그 문장을 적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노트를 바라보다가 그 아래에 다시 적었다.
행복은 목표일까.
아니면 삶을 살아가다 가끔 마주치는 순간일까.
답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예전에는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좋은 질문을 오래 붙들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