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고 나서 달라진 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원래도 자주 만났고.
원래도 자주 연락했고.
원래도 손을 잡고 다녔다.
그런데 이상했다.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모든 게 달라진 느낌이었다.
예나는 여전히 예나였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사진을 보내고.
길 가다가 강아지를 보면 사진을 보내고.
편의점에서 신상 과자를 발견하면 사진을 보내고.
뜬금없이 셀카를 보내기도 했다.
"오빠."
"응."
"이거 맛있어 보여."
"사 먹어."
"오빠가 사줘."
"결국 그 말하려고 연락한 거지?"
"들켰네."
예나는 깔깔 웃었다.
해원도 웃었다.
요즘은 이상하게 예나 웃음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졌다.
주말이었다.
둘은 쇼핑몰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예나는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바빴다.
옷가게도 들어갔다 나왔다.
화장품 가게도 들어갔다 나왔다.
액세서리 가게도 들어갔다 나왔다.
뭐가 그렇게 볼 게 많은지 해원은 신기할 정도였다.
"오빠."
"응."
"이거 어때?"
예나가 블라우스를 들어 보였다.
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쁜데."
"진짜?"
"응."
"이 색은?"
"그것도 괜찮고."
예나는 거울 앞에서 한참을 대봤다.
돌아도 보고.
고개도 갸웃해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살까?"
"마음에 들면."
"음..."
또 고민.
또 고민.
그리고 결국 계산대로 갔다.
해원은 피식 웃었다.
"안 산다더니."
"이건 예외."
"아까도 예외였고."
"여자는 원래 그런 거야."
예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해원은 웃었다.
그런데 해원은 생각보다 많은 걸 기억하고 있었다.
예나는 모를 것이다.
예나가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스타일.
자주 집어 드는 액세서리 모양.
대충 입는 옷 사이즈.
어떤 향수를 오래 맡는지.
어떤 화장품 코너에서 오래 서 있는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선물을 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알고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하나라도 더.
"오빠."
"응."
"나 궁금한 거 있어."
"뭔데."
"오빠는 나 만나면서 해보고 싶은 거 없어?"
해원은 잠시 생각했다.
"글쎄."
"없어?"
"많지."
"뭔데?"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응."
"바람 쐬러 다니고."
"응."
"여행도 가고."
예나가 눈을 깜빡였다.
"여행?"
"응."
"어디?"
"그건 나중에."
"치사하다."
해원은 웃었다.
그리고 되물었다.
"예나는?"
예나는 잠시 생각했다.
정말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잘 모르겠어."
"응?"
"연애는 해봤는데."
예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대학교 때였거든."
"응."
"수업 듣고."
"학식 먹고."
"김밥천국 가고."
"시험기간 되면 도서관 가고."
"그게 거의 다였어."
예나는 웃었다.
"생각해 보니까."
"연애는 해봤는데."
"남들이 하는 연애는 별로 안 해본 것 같네."
해원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럼."
"우리 하나씩 해보자."
"뭘?"
"남들이 하는 거."
예나는 웃었다.
"유치하다."
"좋아?"
"좋지."
예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점심은 분식으로 해결했다.
예나는 떡볶이를 먹다가 입천장을 데었다.
"뜨거!"
"천천히 먹어."
"배고팠단 말이야."
그러면서도 또 먹었다.
해원은 물컵을 밀어주었다.
예나는 자연스럽게 물을 마셨다.
그러고는 별생각 없이 해원 앞에 놓인 튀김도 집어 먹고.
해원 앞에 놓인 순대도 집어 먹고.
컵에 남아 있던 음료도 마셨다.
해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래의 해원이었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이 먹던 걸 먹는 것도 싫어했고.
같은 찌개에 숟가락 넣는 것도 싫어했다.
그런데 예나는 예외였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랐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다.
"왜."
예나가 물었다.
"뭐가."
"방금 이상한 표정 지었어."
"아니."
"했어."
해원은 피식 웃었다.
"그냥."
"뭐."
"예나가 예나 같아서."
예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예나는 여전히 잘 웃었다.
잘 떠들었고.
사소한 것에도 즐거워했다.
해원은 그런 모습을 보며 걸었다.
얼마전의 이야기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사람은 원래 그런 거라는 걸.
상처가 없는 사람이 웃는 게 아니라.
상처를 안고도 웃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해원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예나가 앞으로도 계속 저렇게 웃었으면 좋겠다고.
지금처럼.
별것 아닌 걸 보고 웃고.
별것 아닌 걸 보고 행복해하고.
그렇게.
-시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거창한 일이 아니다.
떡볶이를 먹다가 입천장을 데는 사람이라는 것.
강아지를 보면 걸음을 멈추는 사람이라는 것.
화장품을 구경하다가
결국 립밤 하나를 사는 사람이라는 것.
옷을 한참 고르다가
제일 처음 집었던 옷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사소한 것들이
어느새 좋아지는 일이다.
---
새벽 두 시.
해원은 잠들어 있었다.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예나였다.
해원은 반쯤 감긴 눈으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빠]
[응]
[딸기 먹고 싶다]
해원은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 새벽 2시 17분.
임해원은 옷을 입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