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약속이 있는 날이면 해원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눈을 떴다.
누가 깨운 것도 아니고 알람이 울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눈이 떠졌다.
예전에는 쉬는 날이면 점심 가까이 돼서야 느긋하게 일어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달랐다.
예나를 만나는 날이면 아침부터 괜히 바빴다.
옷장을 열었다 닫았다.
신발을 한참 바라봤다가 다른 걸 꺼냈다가.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만지다가 다시 정리하고.
그러다가 문득 자기 모습이 웃겨서 피식 웃었다.
"내가 진짜."
누가 보면 스무 살 대학생인 줄 알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셔츠를 한 번 더 다려 입고 집을 나섰다.
예나는 약속 장소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해원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예나는 그런 해원을 보자마자 다가왔다.
"오빠."
"왔어?"
"응. 근데."
예나는 해원을 한 번 훑어보더니 웃었다.
"진짜 열심히 사네."
"갑자기?"
"아니. 그냥."
"뭐가."
"그냥 요즘 보면 열심히 사는 사람 같아."
해원은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예나는 그런 해원의 반응이 재밌었다.
모를 리가 없는데.
본인은 끝까지 아닌 척하는 게 귀여웠다.
"삼겹살 먹으러 가자."
"좋아."
"오늘은 내가 진짜 고기 엄청 먹을 거야."
"그러세요."
"진짜야."
"알겠습니다."
둘은 웃으며 삼겹살집으로 들어갔다.
고기가 익어가는 냄새는 언제 맡아도 좋았다.
예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고기가 익어가는 모습을 구경했다.
해원이 메뉴판을 넘기다가 말했다.
"일단 삼겹살 삼 인분 주세요."
예나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
"삼 인분이나?"
"너 잘 먹잖아."
"그래도."
"먹고 부족하면 더 시키고."
예나는 괜히 웃었다.
사실 고기는 좋아했다.
엄청 좋아했다.
그런데 해원 앞에서는 가끔 그런 게 신경 쓰였다.
괜히 많이 먹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괜히 돈 많이 쓰게 만드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해원은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예나는 가끔 혼자 그런 생각을 했다.
고기가 나오고.
익고.
둘은 자연스럽게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예나가 문득 해원의 팔을 붙잡았다.
"오빠."
"왜."
"근육 확인 좀 해볼까?"
해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운동했잖아."
"그래서."
"저번보다 좋아졌는지 확인해야지."
"누가?"
"내가."
예나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해원은 어이가 없었다.
"그런 검사가 어딨어."
"오늘부터 생겼어."
예나는 그대로 해원의 팔뚝을 손으로 눌러봤다.
그리고 한참 만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뭐."
"조금 단단해진 것 같기도 하고."
"진짜?"
"아닌가?"
"야."
예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해원의 팔에 있는 타투까지 손가락으로 쓱 따라갔다.
"근데 이거 볼 때마다 신기하다."
"뭐가."
"안 어울려."
"왜."
"오빠는 되게 바른 사람처럼 생겼는데."
"타투 하면 나쁜 사람이야?"
"아니."
예나는 웃었다.
"그냥 의외야."
그러고는 또 괜히 해원의 팔에 매달렸다.
해원은 그런 예나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예나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점점 스킨십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해원은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그냥 좋았다.
식사를 마친 뒤 둘은 지하상가로 내려갔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았다.
예나는 원래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특히 옷.
액세서리.
소품.
그런 것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였다.
갖고 싶은 게 많으니까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어떤 귀걸이가 예쁜지.
어떤 옷이 유행인지.
어떤 색이 마음에 드는지.
그런 걸 보는 게 재밌었다.
예나는 액세서리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귀걸이 하나를 집어 들고 거울 앞에 대봤다.
해원이 보기에는 꽤 잘 어울렸다.
그런데 예나는 곧 고개를 저었다.
"예쁘긴 한데."
"응."
"나랑은 안 어울리는 것 같아."
그리고 내려놨다.
잠시 뒤에는 머리핀을 집었다.
이번에도 한참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이건 색이 조금 아쉽다."
또 내려놨다.
팔찌도.
목걸이도.
반지도.
전부 비슷했다.
예쁘다고 했다가.
아쉽다고 했다가.
내려놓고 나왔다.
해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옆에서 같이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귀걸이.
베이지색 머리핀.
얇은 체인 팔찌.
그리고 가게 번호.
다-22.
해원은 무심코 한 번 더 돌아봤다.
다-22.
다-22.
다-22.
머릿속에 저장해 두듯 몇 번 반복했다.
예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지하상가를 지나던 중이었다.
예나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러더니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해원도 따라 봤다.
작은 강아지였다.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말티즈 한 마리가 주인 품에 안겨 있었다.
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선이 계속 따라갔다.
강아지가 지나가도 계속 봤다.
해원은 그 모습을 한참 지켜봤다.
그러다가 물었다.
"좋아해?"
예나가 화들짝 놀랐다.
"뭘."
"강아지."
"아."
예나는 괜히 웃었다.
"좋아하지."
"많이?"
"엄청."
말은 그렇게 했는데.
계속 강아지를 보는 시선이 이미 대답하고 있었다.
해원은 잠시 강아지 주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예나는 뒤늦게 눈을 크게 떴다.
"오빠."
하지만 해원은 이미 말을 걸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강아지 주인이 고개를 들었다.
"네?"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잠깐만 인사해도 될까요?"
주인은 흔쾌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요."
해원은 뒤를 돌아봤다.
예나는 아직도 얼어 있었다.
"예나."
"어?"
"허락받았어."
예나는 진짜냐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응."
"진짜 만져도 돼?"
"빨리."
예나는 그제야 다가갔다.
그리고 정말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마치 유리공예품이라도 만지는 사람처럼.
강아지가 손등 냄새를 맡자 예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이고."
해원이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너 왜 이렇게 귀여워."
예나는 연신 웃으며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어떡해."
"너무 귀엽다."
"진짜 작다."
목소리까지 달라졌다.
강아지를 만지는 내내 웃고 있었다.
해원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강아지보다 예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예나는 강아지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도 물어봐 줘야겠다.
예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해원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참 뒤 강아지와 인사를 마친 예나가 돌아왔다.
얼굴이 아직도 밝았다.
"오빠."
"응."
"고마워."
"뭐가."
"아까."
예나는 괜히 웃었다.
"나 진짜 만져보고 싶었거든."
해원도 웃었다.
"알아."
"어떻게."
"얼굴에 써 있었어."
예나는 민망해서 웃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해원의 옆으로 다가왔다.
둘은 다시 천천히 걸었다.
예나는 방금 전까지 강아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해원은 그런 예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대단한 비밀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강아지를 좋아한다는 것.
고기 먹을 때 상추를 꼭 두 장씩 쓴다는 것.
귀걸이를 고를 때 유독 오래 고민한다는 것.
그런 사소한 것들을 하나씩 알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해원은 그런 시간이 좋았다.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