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나 몸보다 먼저 온다고 생각했다.
눈빛으로 오고, 목소리로 오고, 기다림으로 오는 것이라고.
그런데 아니었다.
당신을 사랑하던 시절의 나는 먼저 가슴이 무거워졌다.
봄날 빨래를 널어놓은 마당처럼, 햇볕을 잔뜩 머금은 젖가슴이 괜히 아프고 서러웠다.
당신을 만나러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자꾸만 셔츠 단추를 만졌다.
목 아래, 당신이 본 적 없는 피부가 당신을 먼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사랑은 이상한 일이다.
머리는 아직 괜찮다고 말하는데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손끝은 이유 없이 뜨거워지고, 입술은 물을 마셔도 자꾸 마르며, 심장은 누군가의 이름을 품은 짐승처럼 우리 안에서 서성거린다.
어느 날 당신이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었을 때,
나는 내 몸이 하나의 집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오래 비어 있던 방들에 불이 켜지는 기분.
등뼈 아래로 천천히 따뜻한 물이 흐르는 기분.
살갗이란 결국 영혼이 입고 있는 가장 얇은 옷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이별도 몸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당신이 떠난 뒤에도 나는 한동안 같은 향수를 뿌렸고,
당신이 손을 올려두곤 하던 허벅지 위를 멍하니 쓰다듬곤 했다.
사랑은 끝났는데 몸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당신의 체온을 기억하는 피부와, 당신의 이름을 잊으려는 마음이 서로 다른 계절을 살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 사이에서 늙어갔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사랑은 마음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이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기울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어떤 사람을 잊는다는 것은 기억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한때 그 사람 때문에 꽃처럼 피어났던 내 몸의 계절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