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허진호 감독을 좋아한다.
아니,
그의 영화와 연출 방식을 좋아한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보면 의아할 수도 있다.
큰 사건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고,
자극적인 장면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
마치 오래전에 만났던 사람처럼.
내가 허진호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 속 사랑은 늘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
사랑은 있지만 현실도 있고,
마음은 있지만 시간도 있고,
진심은 있지만 결국 어쩔 수 없는 순간도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랑 이야기를 본 것 같은데,
사실은 사람 이야기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대표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면 그렇다.
영화는 울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슬프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한 사람의 시간을 조용히 보여준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오히려 그 침묵이 더 크게 남는다.
《봄날은 간다》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 변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영화가 사랑보다 사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변하고,
마음은 흔들리고,
관계는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남지 못한다.
그 당연한 사실을 허진호 감독은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악인도 별로 없다.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어렵다.
그저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시간이 흐를 뿐이다.
어쩌면 내가 허진호 감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바라본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등장인물을 평가하기보다 이해하게 된다.
나는 원래 이야기가 끝난 뒤를 좋아한다.
사건보다 흔적을 좋아하고,
사랑보다 사랑 이후를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허진호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방향을 향해 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내가 허진호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