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할아버지는 6·25 당시 마지막 퇴각하던 빨치산에게 끌려가 처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막내삼촌을 뱃속에 품고 계시던 할머니는 남편의 시신을 거두셔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자랐습니다.
동네 사람의 밀고로 억울하게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30대 초반에 혼자 4남매를 키워야 했던 친할머니는 평생 그 시절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고, TV에서 총소리나 전쟁 장면만 나와도 괴로워하셨습니다.
반면 외가의 기억은 또 다릅니다.
외할머니가 살던 동네에서는 밤에는 빨치산이, 낮에는 국군이 사람들을 의심하고 괴롭혔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살기 위해 숨어버렸고, 대신 여자들이 끌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어린 외할머니는 큰외삼촌을 등에 업고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외할머니 차례가 되자
갓난쟁이 큰외삼촌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가 참 예쁘다며 건너뛰라는 지시를 상관으로 보이는자가 했으며, 옆사람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비극을 겪으셨습니다.
그 기억은 평생 외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정말 궁금해요.
우리 친할아버지는 무슨 죄가 있었을까요.
외할머니의 친척과 동네 여자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요.
그 산골짜기 사람들에게 거창한 사상과 이념이 있었을까요.
당시 사람들은 그저 먹고살고 살아남기 바빴다고 들었습니다.
제 친가는 빨치산에게 가족을 잃었고, 외가 동네는 국군의 손에 희생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을 1과 0으로 나누기 어렵습니다.
5·18도, 세월호도, 이태원도, 무안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가족을 잃는 슬픔과 상처는 이념과 지역을 가리지 않습니다.
국가보훈대상자인 아버지를 보며 저는 더 생각하게 됩니다.
역사와 사람을 너무 쉽게 흑백으로 나누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종종 전라도는 빨갱이라고 구분짓던데요.
전라도에서, 위에서 내려온 빨치산에게 제 친할아버지도 희생됐습니다.
저는 쿠팡도 잘 쓰고, 유니클로 옷도 입고, 일본 여행도 갑니다.
그리고 공산주의 역시 반대합니다.
하지만 사람과 지역, 그리고 비극까지 한 덩어리로 묶어 단정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빨갱이는 없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