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로
첫 출근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약 7개월만이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출근한 퇴임일인 2022년 5월 9일로부터 1330일 만의 일입니다.
먼저
오늘날의 청와대가 있는 자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 자리가
처음 역사에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 부터 921년전인 1104년 고려 숙종때 남경 궁궐이 들어서며 시작됩니다. 이전까지 백성의 땅이었던 이곳이 권력의 땅으로 변하는 순간 이었습니다.
이후 1382년,
고려 우왕이 개경에서 이곳으로 옮겨왔으나 5개월 만에 돌아갑니다.
그리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건국 4년만인 1395년 경복궁으로 천도를 단행합니다. 경복궁이란 '하늘이 내린 큰 복' 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한편 조선시대
현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 후원으로 '회맹단'이 있었습니다. 신하 들이 임금에게 충성맹세를 하는 장소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탄 뒤로는 관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1868년 경복궁을 중건하며 흥선대원군은 이곳에 경무대(景 武臺)란 이름의 후원을 만들었습니다.
일본 강점기인 1939년에
이곳의 전각들을 철거하고 조선총독 관저가 들어섰고, 지붕은 증산교 계통인 보천교 본당의 푸른 색 기와를 가져다 덮었습니다. 일본이 패망한 뒤 총독관 저는 미군정사령관 하지 중장의 관저가 됐습니다.
이를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며 이승만 대통령이 이어받았습니다. 가난한 신생국이라 관저를 새로 지을 여력이 없었습니다. 관저의 이름은 경무대를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지명이 건물이름으로 바뀐 셈입니다.
4.19혁명 뒤
윤보선 대통령은 이승만 정권과 단절을 노려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작명을 부탁 받은 언론인 출신 김영상은 화령대(和寧臺)와 청와대(靑瓦臺) 두 가지 안을 제시했습니다.
청와대(Blue House)는
관저 지붕의 푸른빛 기와에서 착안했고, 미국 백악관(White Hous e)를 염두에 둔 말이기도 합니다.
화령은
이성계가 조선을 개 국하며 명나라에 요청한 2가지 국호 중 하나이죠.윤보선은 화령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며 청와대를 택했습니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 뒤 황와대(黃瓦臺) 로 이름을 바꾸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황금빛은 황제의 색입니다. 박정희는 대통령마다 집 이름을 바꿔서 되겠냐며 일축했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김영상이 제안한
청와대라는 이름이 역사적으로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경무대에 있던 조선 총독 관저 건물의 지붕이 청색이어서 붙였다 설이 유력하긴 한데
총독 관저의 지붕 색깔은
청색보단 녹색에 더 가까웠습니다. 청색이 통상 파란색, 녹색이 푸른색으로 해석되는 것으로 볼 때 녹색에 가까운 총독 관저 지붕을 보고 청와대로 지었다는 설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저는
역사적 관점에서 조선초기 경복궁을 건설할때 부터 궁궐의 주요 건물을 청기와로 지었다는 것에서 유래한거 아닌가 하는 설을 제기해 봅니다.
이러한 근거로
그동안 경복궁 발굴 과정에서 청기와들이 다량 발견되었었는데 2022년부터 진행된 세종때 만들어진 경복궁 자미당 발굴조사에서 지붕 전체를 덮을 만큼의 엄청난 양의 청기와 지붕이 출토 되었습니다.
특히
자료에 따르면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당시 청기와로 복원하고자 하였으나 청기와 한장 가격이 오늘날 기준으로 약 30만원 가량 하는지라 결국 포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면
조선 중기 광해군 때 서촌 중남부에 지어진 대규모 궁궐 '인경궁'이 있었는데, 그 주요 전각 중에 '청와전'이 있었고, 그밖에도 인경궁에는 청와(청기와)를 사용한 건물이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유일한 청기와 궁궐 건물인 창덕궁 선정전은 바로 인경궁의 광정전을 옮겨지은 것이죠.
김영상은 [서울 육백년]이란 서울 역사의 고전을 쓴 사람입니다. 역사학자였던 김영상이 경복궁 청기와나 인경궁의 청와전이나 청기와 건물을 알았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한편 1990년대
이전까지는 청기와 건물은 집무실 밖에 없었습니다.
1988년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이 새로 지은 청와대의 집무실과 관저의 지붕에 청기와를 얹었고, 결과적으로는 청와대가 확실하게 청기와를 얹은 건물이 됐습니다.
그 뒤 김영삼은
역사바로세우기 정책의 하나로 청와대의 유래가 됐을 수도 있는 조선 총독 관저 건물을 철거했죠.
그리고 청와대는
잠깐 동안 국민의 땅으로 돌아갔다가 온갖 혼란만 남긴 채, 다시금 권력의 땅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사실
수도를 천도하지 않는 한 서울에서 지금의 자리만큼 한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땅은 없습니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늘 반복됩니다.
지금의
권력자들이 청와대의 숨은 역사를 깊이 돌아보며, 단지 권력자에게 충성맹세를 하는 곳(회맹단) 아닌 국민을 위하여 하늘이 내린 큰 복(경복궁)이 있는 땅으로 되돌아 가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