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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29일
조선은 역사속으로 영원히 사라졌고 34년 11개월 2주간 일제의 불법적인 지배를 받게 되었다.
당시
이 땅의 백성들은 나라가 망한것은 슬퍼했지만 조선의 멸망은 슬퍼하지 않았다. 이 땅의 위정자, 지식인들 대부분이 일제에 굴복했지만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백성들은
사유(思惟)의 벽을 넘어섰고, 전인미답의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각자 생각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세계로 나갔다.
그 자리에
조선의 근간을 이루는 왕조와 주자학은 없었다. 따라서 그들이 새우려는 새로운 나라에서 왕조의 흔적은 철저히 지워졌다.
생각해보시라.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조선 왕실의 후손들이 있었는가를...독립운동가들이 왕실 일가나 고관 대작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있는가를?
새로운 나라에
왕실이나 고관대작들은 오히려 걸림돌이었다.
3•1운동에서 조차
조선왕실과 위정자들은 철저히 배격되었다.
가장먼저 움직인 것은
한 때 왜놈이라 부르던 일본의 비약적 발전을 배우기 위해 현해탄을 건넌 이들이었다.
이들중 대다수는
친일 세력이 되었지만 일본을 통해 서구열강의 부도덕을 목도한 인사들은 더욱 치열한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 무리들은
학교설립,병원설립 등 미국 선교사들의 무조건적 희생정신에 감동한 인사들이 세계열강 이면서도 자유로운 기독교정신의 나라 미국을 배우기 위해 태평양을 건넜다.
실제
가쓰라-테프트 밀약에 의해 우리나라를 일본에 넘긴 미국은 조선에 끼친 영향력이 적었으므로 이에 대한 실체를 알지 못했던 조선의 백성들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미국에 대한 반감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1919년을 기점으로
세번째 무리들이 패권적 제국주의와 맞서 이제막 태어난 사회주의 체제를 배우기 위해 소련으로 따났다.그들이 보기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외치는 사회주의 시스템이 매력적으로 보일만 했다.
이와함께
네번째 무리들은 무장항일 투쟁을 펼치기 쉬운 조선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 중국을 택했다. 청이 망하고 들어선 장개석 민주정부는 조선독립을 바라는 세력에겐 또 다른 희망 이었다.
당시
소련과 중국의 상황은 일제에 수탈 당하고 있는 조선과 묘하게 닮아있어 쉽게 동지의식이 싹틀 수 있었다.
적어도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이들에겐 제국열강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니.....
마지막으로
조선시대 기본질서인 주자학적 사유(思惟)의 벽을 넘지 못한 나머지 백성들은 조선에 남아 일제의 피박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조선에 남았던
대부분의 백성은 존재안에서 생각하는 높은 사유(思惟)의 벽에 갖힌, 그러나 몸부림치며 깨고 싶었으나 용기가 없는......
이렇게
이 땅의 백성들은 자신이 만들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각자의 생각과, 각자의 방식으로 34년 11개월 2주간 일제의 불법적인 지배에 맞서거나 굴복했다.
나머지 얘기는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