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명성황후와 가배를 마시고 있던
알렌(Horace N. Allen)에게
명성황후가 물었습니다.
성탄일이 뭐예요?
이것이
우리나라에 기록된
최초의 성탄절 관련 내용입니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조선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884년 이후 10년만의 일 이었습니다.
물론
1890년대 초
배재학당, 정동교회 등에서는 성탄예배를 드리고 선물을 나누는 행사들을 했었고, 1896년엔 독립신문에 “예수 탄신일”이라는 표현으로 성탄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최고 가치였던 조선 백성들에게 왜(?) 듣보잡 성탄절이 이렇게 쉽게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강점기하에 조선의 전통적인 명절을 탄압하며 없애려한데 있습니다.성탄절이 동지 즈음에 있다는 것도 한가지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우린 전통적으로
동짓날 팥죽을 함께 나누어먹는 풍속이 있었는데, 성탄절에 선물을 나누고 음식을 함께 하는 풍습이 우리 풍속과 맞아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해방이후 성탄절은 서구세계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변화해 갑니다. 성탄절이 지나면 곧이어 설이 있는 까닭에 가족과 함께하긴 좀 애매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죠.
물론 몇개월 전엔
가족들과 함께 추석을 보내고 왔으니.....
해서
우리나라 성탄절은 가족대신 연인,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들의 축제로 변해버렸죠. 요즘 40대 이상 되시는 분들이 성탄절 분위기가 안든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는
치열한 남북대결의 냉전시기임에도 12월 24일밤 통행금지를 없앴던 것도 젊은 청춘의 해방구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통행금지가 엄격하던 60~70년대 유일하게 통행금지가 없던 날이 24일밤과 제야의 종이 울리던 12월 31일 뿐이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날밤 새워보신 분들 꽤 있을걸요?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새벽송을 돌던 추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