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구를 중심으로 역사•문화탐방을 하는 모임 / 궁궐•왕릉•문화유적지 탐방/월2회(1.3주 토요일) 동작구 걷기모임입니다.
서울시 동작구
문화/예술
노란잠수함
인증 18회 · 2개월 전
오늘을 살아가며, 역사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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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도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임금 역시 종묘사직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임금도 일종의 내란죄를 범할 수 있다고 봤던 셈입니다.
1506년
연산군을 몰아낸 반정세력이 내세운 핵심 논리는 '연산군이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했다'였습니다. 연산군이 국헌 질서를 위협한다고 인식한 것입니다.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하는 중종반정의 주역인 박원종은 연산군 12년 9월 2일 자(양력 1506년 9월 18일 자 [연산군일기]에 "주상은 임금의 도를 잃어 종묘를 맡을 수 없고, 천명과 인심이 이미 떠났다"며 정변을 정당화 합니다.
박원종을 비롯한 반정 세력들은
막상 거사를 일으키려고 하니 주저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을 국시로 하는 나라, 이유가 뭐가 되었던 간에 임금에 대한 충절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으니까요.
제 아무리
연산이 폭군이라 한들 왕을 끌어 내린다는 게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박원종 자체가 본래 연산의 최측근으로 총애를 누려왔던 터라 과연 사대부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가 걱정 되었습니다.
각설하고
결국 반정 세력은 사실상 조정의 거의 모든 신료들이 참여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반정 세력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인사로는 결국 신수근과 임사홍 두 사람으로 좁혀지게 됩니다.
다만
야사 기록을 보면 반정 세력 내에서는 이마저도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임사홍이야 그렇다 쳐도 신수근의 경우 본인 자체는 크게 잘못한 게 없는 데다가 무엇보다도 다음번 왕은 사실상 진성대군이 거의 확정적인만큼 진성대군과 혼맥으로 연결된 신수근을 제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을 테니까요.
야사 에서는
박원종이 은밀하게 신수근을 찾아가 누이와 딸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물으며 신수근의 의중을 넌지시 떠 보았다고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
신수근의 답변은 단호했습니다.
신수근은
"임금이 아무리 폭군이라 해도 신하가 이를 몰아내는 것은 불가하며 무엇보다도 금상은 몰라도 세자는 총명하니 세월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한 것 입니다.
박원종은
신수근을 설득할 수 없다고 여겼고 결국 이 때문에 신수근은 제거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1506년 9월 2일,
드디어 반정의 막이 올랐습니다.
반정이 개시됨과 동시에 반정 세력들은 계획대로 임사홍과 신수근을 즉시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반정 세력은 군세를 모아 훈련원에 집결한 후 박원종의 지휘 하에 한밤중에 창덕궁으로 진격합니다.
반정 세력이
창덕궁 앞에 진을 치자 그 동안 눈치를 보던 수많은 문무백관들이 서둘러 반정군에 가담했습니다.
박원종이 거병을 한 이상
무장들은 대게 그와 뜻을 함께 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미 신망을 잃은 임금으로써는 이를 막을 방도가 없으리라 판단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대세가 기울자
궁을 수비하던 갑사들뿐만 아니라 내관들까지 모두 줄행랑을 쳐버렸습니다. 심지어 연산을 측근에서 보필해야 하는 승지들마저 도망쳐버리니 연산은 홀로 궁에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무소불위의 철권을 휘둘렀던 연산은 정말 허망하리만치 손쉽게 권좌에서 끌려 내려오게 되었으며, 조선 개국 이래 처음으로 일어난 반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