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구를 중심으로 역사•문화탐방을 하는 모임 / 궁궐•왕릉•문화유적지 탐방/월2회(1.3주 토요일) 동작구 걷기모임입니다.
서울시 동작구
문화/예술
노란잠수함
인증 18회 · 2개월 전
세계문화유산-종묘의 비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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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를 들어서면
첫번째 만나는 건물이 망묘루 입니다.
뭐 뻔한 얘기는
토요일 하기로 하고 오늘은 망묘루 뒤에 있는 고려 21대 공민왕의 사당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종묘에
고려왕 사당이 있다구요?
네...있습니다.
고려 공민왕 사당은
태조 이성계의 교시에 의해 처음부터 만들어졌습니다.
공민왕은
1330년에 태어나 22살인 1352년에 즉위했고 44살인 1374년 사망했습니다.
이성계는
1335년에 태어났으니 공민왕이 즉위에서 사망하기 까지 이성계의 시간은 17세에서 39살이었습니다. 이성계는 공민왕의 부하였고 그를 깊이 숭모했습니다.
종묘에 우선
공민왕 사당을 배정한 것은 이성계의 마음속에 있는 공민왕에 대한 존경과 공민왕 사후에도 고려인들에게 시대의 영웅으로 공민왕이 자리를 잡고 있기에 이제 막 조선을 건국한 입장에서, 고려는 멸망했지만 고려인이 좋아했던 공민왕의 뜻을 받든다는 상징을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지금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마음 같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조선시대
선왕을 기억하는 방법에는 종묘의 정전이나 영녕전 처럼 신주를 모시는 것도 있지만, 선왕의 초상화를 보관하고 있는 영희전을 찾아 가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영희전은
지금 영락교회와 중부경찰서자리에 있었습니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조선왕조실록에는 왕비에 대한 미모를 언급한 글이 없는데 유일하게 장희빈에 대해서는 아름답다는 말이 나옵니다.
바로 숙종이
영희전에 다녀오던 당시 수표교에서 장희빈을 처음 봤을 때 그 미모를 보고 반했다는 기록이......^^
각설하고....
공민왕에게
부인 노국공주는 정치적 동지였습니다. 원나라에 예속된 통치 속에 있었지만 개혁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적 사명에
도움을 준 분이 노덕공주였습니다. 원나라의 공주였기에 가능했지요.
그녀는 공민왕이
개혁을 할 수 있는 기초를 튼튼히 마련해 주었고 외모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선함과 정치감각이 좋았기에 공민왕에겐 노덕공주가 전부였습니다.
공민왕이 35살 때
노국공주는 난산으로 사망했습니다.
훗날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윤씨가 공민왕 부인 노국공주와 외모가 비슷하다 하여 노국공주의 초상화를 다 수집하였다고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공민왕 사당 안에는
두 개의 그림이 있는데, 하나는 공민왕과 부인 노국공주가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과 공민왕이 직접그린 준마도입니다.
공민왕은
고려 왕 가운데 가장 그림을 잘 그리고 서예와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 방문해서 보면
정전에 비해 아주 작게 보이지만 태조 시절에 종묘는 공민왕 사당과 태조의 4대 선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 이렇게 네 분만 모셔져 있었고, 사당의 크기도 현재 공민왕 사당의 크기와 같았습니다.
종묘
정전의 역사는 강의 시간에 하기로 하고, 종묘를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역사는 단절이 아닌 전승이라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진정성과 깊이 입니다.
종묘는
왕조의 역사를 넘어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는 소중한 '터' 입니다, 애국가 가사중 '길이 보존하세'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