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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宗廟)는
조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국가 사당입니다.궁궐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라면 종묘는 영혼을 위한 공간입니다.
춘추시대 말기에서
전국시대 초기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주례> 고공기에 나오는 도시계획의 원칙 중 하나인 '좌묘우사'를 따라 경복궁 동편에 종묘를, 서편에 사직단을 조성했습니다.
사직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며, 사직단은 임금이 토신과 곡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었습니다.
농사가 경제활동의 전부고,
그 농사는 다름 아닌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 의해 좌우되니 사직은 곧 경제를 뜻했습니다.
사극에서
신하들은 "전하, 종묘사직을 살피소서"라며 결연한 목소리로 진언하는데, '유교의 나라'에서 종묘와 사직은 곧 국가 그 자체였습니다.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에 들어서면 키 큰 나무들 사이로 흙길이 나옵니다. 도심 한복판임에도 바깥소음은 곧 들리지 않습니다.
새 지저귀는 소리 외엔
고요해 적막감이 느껴집니다. 번잡한 종로에서 시간 날 때면 종묘를 찾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요한 흙길은
일직선으로 종묘의 맞은편까지 500m가량 이어집니다. 역대 왕들의 신주를 모신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까지 가는 중간에 향대청, 재궁, 전사청 등 부속건물들이 늘어서있습니다.
향대청 앞으로는
사각형의 연못이 있고, 가운데에 둥근 섬이 있습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에 입각한 것 입니다.
궁의 연못에는 대개
소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과 달리 제례를 지내는 종묘에는 향나무가 있습니다. 다른 연못과 달리 물고기가 살지 않은 못 입니다.
종묘는
죽은 자의 공간이어서 생물이 없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나무는 숲이 되고, 고요함은 더해집니다.
정전은
종묘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물입니다. 가로 101m로 국내에 있는 목조건물 중 가장 긴 건물입니다.역대 왕과 왕비가 승하한 후 삼년상을 치른 다음에 그 신주를 옮겨와 모시는 곳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와 역대 왕 중에서 공덕이 큰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모셨습니다. 임진왜란에 불타고 1608년 다시 세워진 것이 지금껏 남아 있습니다.
영녕전은
정전에 모시지 않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별묘(別廟)로, 세종 때 세워졌습니다. 6칸으로 시작했고, 헌종 때 현재 규모인 16실이 됐습니다.
노산군으로 폐위된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는 복위 후 문종 옆에 모셔졌습니다. 왕위를 계승한 27명의 왕 가운데 폐위된 광해군과 연산군 두 명의 신주만은 종묘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신주(神主)의 재질은 밤나무입니다.
밤은
종자가 싹을 틔울 때 껍질은 땅 속에 남겨 두고 싹만 올라옵니다. 또, 오랫동안 껍질이 땅 속에 남아 싹이 튼 묘목이 잘 생장할 수 있게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그래서 밤나무는
희생하며 조상을 위하고 자신을 낳아준 부모의 은덕을 잊지 않는 기특한 나무로 본다고 합니다.
종묘의 한쪽 끝엔
창경궁과 이어지는 북신문이 있습니다.
왕은 비공식적으로
이 문을 통해 종묘를 찾아 선대의 왕들과 많은 마음의 대화를 했었습니다. 창경궁과 창덕궁, 종묘는 붙어있었지만, 일제가 1932년 종묘관통도로(현 율곡로)를 만들면서 단절되었습니다.
2023년 창경궁 율곡로 위로 터널이 만들어져 일제가 끊었던 종묘의 정맥이 이어진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 입니다.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됐습니다.
공간이라는 유형 유산,
관련한 무형 유산이 모두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종묘제례악은
세종이 직접 작곡한 음악으로, 조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서 제례를 올릴 때 연주하는 음악과 춤을 말합니다.
세종 7년(1425년),
세종은 이조판서 허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향악(鄕樂 우리나라 음악)을 들었는데, 종묘 제향에서는 당악(唐樂 중국계 음악)을 먼저 연주하니 어찌 된 까닭인가?”
이렇게
보태평(태평성대를 이룬다는 뜻), 정대업(대업을 안정시켰다는 뜻)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등
제사를 드리는 공간은 많지만, 의식의 절차, 음악, 춤까지 모두 남아있는 나라가 우리 말고 있을까 싶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