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양도성안 궁궐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동작구와도 관련이 있는
궁궐인 행궁(行宮)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동작구 본동에 있는 노량행궁】
【행궁(行宮)】
행궁은 왕이 본궁 밖으로 나아가
머무는 임시장소로서의 궁궐을 말합니다.
이 행궁은 크게
왕이 숙박을 겸하던 행재소(行在所)와 잠시 쉬면서 식사를 하던 주정소(晝停所)로 나뉘어집니다.
현재
대표적인 행재소(行在所)로의 행궁은 온양행궁, 강화행궁, 광주행궁(남한행궁) 부안행궁,화성행궁, 전주행궁 등이 있는데
왕이 숙박을 하던
이 행궁들 가운데 병자호란 당시 40여일 동안 청나라에 맞섰던 속칭 남한산성으로 불리는 광주행궁 (남한행궁)과 정조의 행차로 널리 알려진 화성행궁이 대표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주정소(晝停所)의
기능을 했던 행궁은 왕의 이동 경로상 무수히 건설되었으나, 행궁의 규모가 간단하고, 도심내에 건립된 경우가 많아 전부 없어지고 현재는 용양봉저정으로 불리는노량행궁과 경기도 구리시 봉황동(鳳凰洞)에 건물터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정도 입니다.
현재
동작구 본동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용양봉저정은 사실 노량행궁의 중심 건물이었습니다. 한강주교환어도에 나오는 노량행궁은 현재 남아있는 용양봉저정 건물을 비롯하여 4~6채 정도의 건물이 있었습니다.
물론
우측 하단 건물은
배다리를 관리하던 주교사 건물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정조대왕이 [노량행궁에서 점심을 드시다.]로 나올 뿐만 아니라 이곳을 마지막으로 들렀던 고종황제의 기록에도 노량행궁으로 나옵니다.
철도와
도로의 개통이후 그 기능을 상실한 노량행궁이 오늘날과 같은 용양봉저정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일본인 이케다에 의한 '용봉정'온천공원으로의 변질과 6.25전쟁으로 인한 파괴,
그리고 1954년 국립중앙 박물관 학예연구실 고고부에 의해 작성된 [용봉정보호관리에관한건]으로 부터 출발합니다.
이후
1971년 문화재관리국 유형문화재1과에서 작성한 [용봉정설계승인]에 관한 건에 이르기 까지 그대로 사용하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첫단추를 잘못 꿴 결과입니다.
우리가
노량행궁을 용양봉저정으로 부르는 것은 경복궁을 경회루, 혹은 근정전으로 낮춰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노량행궁에 대해 원래 이름인 노량행궁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내일은
광화문일대 우리의 문화유적지를 탐방하는 날입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