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부터 번댕이(樊唐里)와 높은절이(高寺里)를 합쳐 번대방리(番大方里)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농사와 관련이 있는 땅의 이름입니다.
여기서
주목되는 한자는 ‘번(番 차례 번)’이라는 글자인데 번(番)자는 ‘차례’나 ‘횟수’, ‘짐승의 발바닥’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 田(밭 전)자와 釆(분별할 변)자가 결합한 모습입니다.
즉 번(番)이란
밭(田)에 씨앗을 뿌리고 지나간 농부의 발자국 모양(釆)이 차례로 나있다 하여 횟수나 차례를 뜻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땅의 주소로 쓰이는 ‘번지’를 표현할 때도 '차례 번(番)'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방(大方)이라는 뜻은
‘네모 반듯함’을 표현하는 글자입니다. 따라서 번대방(番大方)이란 '논이나 밭에 무수히 찍혀 있는 발자국을 보며 어느 집 땅인지 알아내야 할 정도로 너른 들판이 있었다.'는 뜻을 표현하는 말 입니다.
고구려 장수왕때
잉벌노(仍伐奴)이라는 지명이 붙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한편
일부 학자들은 대방동과 신대방동은 조선 정조가 지금의 상도동 장승배기에 세운 대방장승으로 인해 생긴 이름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즉 이곳에
8도 장승의 우두머리인 대방장승이 서 있어서 번대방리라 했고, '번대방'이란 '대방장승이 지키는 곳'(번을 서는 곳)이라는 뜻이라는 것 입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져 보입니다.
대방동의 지명변천은
정조(1789년)때 제작된 호구총수(戶口總數) 기록에 따르면 금천현 하북면 번대방리(番大方里)로, 대한제국(1895년)시기에는 인천부 시흥군 하북면 번대방리, 1896년에는 경기도 시흥군 하북면 번대방리로 되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엔 경기도 시흥군 북면 번대방리가 되었고, 1936년 번대방리 중 대방천 우측 지역(오늘날 대방동)이 경성부에 편입되어 당시의 신길리의 번대방리를 합하여 신대방정이 되었습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
마지막 시기인 1943년 영등포구 관할이 되어 다시 신길정과 번대방정으로 분리 되었고,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대방동이 되었습니다.
해방이 되면서
이 땅의 이름이 번대방(番大方)에서 대방(大方)으로 바뀐 것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대방동 지역이 공장지역으로 바뀌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 하면서, 농토가 모두 없어지고 반듯한 그 농토 위에 주택들이 밀집해 들어섰다는 것을 대변하는 땅의 기록은 아닐까요?
내일 부터는
동작을 지역의 지명 변천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