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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이름은
그냥 붙여지는 것이 아닙니더. 그 이름에는 그 땅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이 있고,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는 지명이 암시해주는 재미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먼저 동작구에서
서쪽에 해당하는 대방동, 신대방동, 상도동 지역을 점령한 고구려(475년, 장수왕 63년)는 지명을 잉벌노(仍伐奴)라 정하는데 잉벌(仍伐)은 정복해서 빼앗는다는 뜻이 있고, 노(奴)은 ‘귀중한 농토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 호족의 도읍지’를 뜻합니다.
즉 고구려가
새로운 땅을 점령했는데 ‘이 기름진 땅에 이미 토착부족이 살고 있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원래 이 땅은 한성 백제의 땅이었습니다.
계루부(桂婁部)
절노부(絶奴部)·순노부(順奴部)·관노부(灌奴部)·소노부(消奴部)의 5부족 연맹체로 이루어져 있던 고구려는 영토를 점령한 후에 그 땅의 위치에 따라 노, 누, 나, 나가 등의 부족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노(奴)’는 하천가에 사는 토착 부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구려의 소노부 절노부 순노부 등의 부족들이 압록강 주변 토착세력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듯,
고구려가
현재의 한강 유역을 정복한 후 ‘노(奴)’를 붙여 준 것은 고구려의 점령이 있기 이전부터 한강변을 생활터전으로 하는 토착세력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땅의 기록인 것입니다.
잉벌노(仍伐奴)는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곡양(穀壤)으로 불리게 되는데 곡양(穀壤)은 [곡식 곡(穀) 흙덩이 양(壤)] 말 그대로 ‘비옥한 토지’라는 의미로 이곳이 곡식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임을 말하고 있으며,
고구려시대에 불렸던
잉벌노(仍伐奴)라는 지명이 그냥 붙여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방동 일대는 곡창지대였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이 지역은 번댕이(樊唐里)와 높은절이(高寺里) 라는 마을로 불렸었는데, 1966년 한글학회에서 발간한 [한국지명총람] 서울시편을 보면 ‘옛부터 낙천군, 연령군의 묘를 모신 계동궁 연못이 있던 곳이라 하여 번당리(樊唐里)라 하고,
번댕이는
번당리의 속칭’이라 했다고 기록되어 잇고,계동궁 연못에 대해서는 ‘낙천군과 연령군을 모셨던 계동궁에 딸렸던 연못 터로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는
경기도 금천현 번당리(현 동작구 대방동)에 안장되어 있던 연령군묘를 1935년 경성부 구획정리 때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구 가야사터 부근으로 이장한 것과 공군사관학교로 인해 연못이 없어진 것을 설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번당(樊唐 울타리 번, 못 당)이란 연못이 울타리처럼 둘러 쳐져 있다는 뜻으로 현 보라매공원 운동장으로 사용되는 곳으로 추정되며,
1958년 이전까지
이곳에 커다란 연못이 있어 마을사람들이 가물치, 잉어, 붕어 등을 잡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음을 비추어 볼 때 대방동 지역은 물이 풍부한 비옥한 땅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연령군 신도비]
높은절이(高寺里)는
용마산·노량진근린공원과 그 지류 언덕의 동쪽에 있던 마을을 일컫는 것으로 이곳에 청련암(淸漣菴)이란 절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한강변이 보이는 높은절이 정상에 있던 백로 어린이공원은 아파트 재개발 공사중으로 옛 모습을 찾을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일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