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酒幕)은
17C이후 교통의 요지에 자연적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처음 등장할 당시, 주막이라는 이름에서 보여지듯 술은 팔았지만 음식은 팔지 않았습니다.
초기엔
잠자리 역시 그냥 주막의 처마밑에 거하는 형태였습니다. 노량진 용양봉저정에 가시면 한강주교환어도를 통해서도 그 모습을 보실수 있습니다.
해서
여행객들은 각자 밥을 해먹어야 했고, 추운날엔 이불도 필수로 가져다녀야 했습니다. 이러한 기능은 18C까지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후로도 주막에선
술+말먹이용 풀+잠자리 이것만 겨우 해결할 수 있었는데 잠자리라 해봤자 방안에 목침한개가 고작이라 여행객들은 여전히 쌀과 이불은 필수로 가지고 다녀야 했습니다.
따라서
초기 주막에선 술값과 말먹이 값만 받았고 숙박비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8C 중반을 넘어서면서 주막은 여행객들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 술과 밥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주막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당시 주막에서 팔기 시작한 메뉴는 백반(밥+국+반찬 한두가지)이 주였으나 주막에서 가장 인기있던 메뉴는 개장국(보신탕) 이었습니다.
여행에 지친 여행객들에겐
개장국이 기력을 회복하는 최고의 보신 메뉴였던 셈이죠.
오늘날과 같은 국밥 형태는
소고기가 일반화 되기 시작하는 19C 구한말 이후 소의 부산물들로 만든 육개장,설렁탕,선지국이 취급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이처럼
한그릇 뚝딱할 수 있는
국밥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따라서
18C 이전 주막장면은 어제 말씀드린것 처럼 그저 허구적인 장면인 셈입니다. 그냥 그려려니...
위에 언급한 얘기들이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주막 이용 후기를 기록한 글이 남아있는데 바로 전라도 고창 사람이었던 18C 실학자 황윤석(黃胤錫)이 쓴 이재난고(頤齋亂藁) 라는 책 입니다.(1729년~1791년)
참고로
황윤석은 영.정조때 사람으로
영조때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숙박비는 사람 10푼, 말 10푼 식사 끼니당 40푼, 떡은 20푼 술은 한병에 15푼이었으나 안주는 공짜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즉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 숙박비는 거의 들지 않았던 셈이거니와 사람이나 말이나 같은 취급을 받았음을 알수 있습니다.
당시
말 한필을 가지고 여행을 하다 저녁나절 주막에 머물면서 저녁식사에 술한병, 말먹이를 주고 숙박을 한 후 아침식사와 말먹이를 주었다면 대략 한 냥 남짓 필요함을 알수있습니다.
1970년대
한복남이라는 가수가 부른 '엽전 열 닷냥'이란 노래가 있는데 주막이 있던 18C 당시라면 엄청 큰 돈이었습니다.
제가 황윤석을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