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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선의
주요 교통.통신의 수단이었던
역참,원,주막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역참(驛站)이란? 역 역(驛) / 역마을 참(站)의 한자어인데 조선시대 공공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된 교통기관인 역(驛)과
교통로상에 마련되어
공문(公文)을 중계하고 공용 여행자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던 참(站)이 합쳐진 말입니다. 따라서 역참은 출장을 다니던 관리. 양반들만 이용할수있었습니다.
아!
저 같은 평민은 이용할수 없어서
길바닥에서 자야만..... -.-;;
한가지 더....
이쯤에서 마패 얘기도 해야하는데
그건 다음기회에 하기로 하고...
역참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존재했었던
오래된 교통,통신 기관이었지만
오늘은 조선시대 얘기만 하겠습니다.
시대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1466년 세조때 만들어진 경국대전 기록에는 41역도 516역의 전국 역로망체제가 완비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808년
순조8년 작성된 만기요람을 보면 전국에 총 504곳의 역참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역참은
보통 30리 마다 1개소씩 있었는데 이곳에는 종 6품의 찰방을 배치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정약용도 33세때 천주교인으로 몰려 홍주(홍성) 찰방으로 강등되어 내려가며 쓴 시가 남아 있기도 합니다.
또한 역참을
동작구와 연관지어 보자면 정조능행차를 다룬 '원행정례'에 왕의 행렬이 도화참발소(桃花站撥所) 앞길을 지났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사당역 주변에도 역참마을이란 지명이 남아 있는것으로 보아 이곳에도 역참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수 있습니다.
고종황제의 능행차시
승방평에서 쉬면서 능의 상태를 확인하는 전령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승방평은 오늘날 사당역 일대 입니다.
역참제도는
대한제국시기 까지 그대로 유지되긴 했으나, 임진왜란 이후 그 기능이 거의 마비되어 봉수제(熢燧制) ·파발제(擺撥制) 등이 운영되었고,
일제강점기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모두 없어졌고 그 과정에서 교통의 중심지에 있었던 역참,원등은 도시화 과정에서 모두 사라지고 일부 지명으로만 남아 있답니다.
내일 이어서....
● 원행을묘에 기록된 도화참발소(桃花站撥所)는 오늘날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동광교회 부근으로 그 뜻은
도화(桃花) : 성도화리
참발소(站撥所) : 역참
즉 : 성도화리에 있는 역참이란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