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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음식/음료
Nayamuru
인증 31회 · 1개월 전
출첵
철관음
철의 침묵 속에 핀 난초, 철관음을 마시다
찻상 위에 놓인 철관음 찻잎을 가만히 내려다봅니다. 동글동글하게 말린 모양새가 마치 작고 단단한 초록색 구슬 같습니다. 그 빛깔은 짙은 녹색을 띠면서도 표면엔 은은한 광택이 돌아, 이름 그대로 '철(鐵)'처럼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찻잎끼리 부딪힐 때마다 들리는 짤랑거리는 소리는 이 차가 품고 있는 밀도를 짐작게 합니다.
차를 우릴 준비를 하며 자사호에 뜨거운 물을 붓습니다. 잠자고 있던 찻잎이 깨어나며 처음으로 내뱉는 숨결은 놀랍도록 향기롭습니다. 방금 핀 난초꽃의 향기 같기도 하고, 잘 익은 복숭아의 달콤한 끝맛 같기도 한 그 특유의 향을 사람들은 '음운(音韻)'이라 부릅니다.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소리가 되어 흐른다면 아마 이런 향기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일곱 번을 우려도 변치 않는 마음
철관음의 진가는 끈기에 있습니다. '칠포유여향(七泡有餘香)', 즉 일곱 번을 우려내도 여전히 향기가 남아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첫 잔은 화려한 꽃향기로 입안을 깨우고, 두 번째 잔은 묵직한 바위의 기운으로 목을 축이며, 세 번째 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차의 본모습인 달큰한 감칠맛이 차오릅니다.
뜨거운 물 세례를 받을 때마다 꽁꽁 뭉쳐있던 잎들은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본래의 커다란 잎사귀로 돌아갑니다. 그 고단한 과정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맑고 황금빛 도는 찻물을 내어주는 모습이, 마치 풍파를 겪으며 인격을 완성해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닮았습니다.
무거움을 비워내고 얻는 가벼움
차를 마시는 내내 입안에 감도는 쌉싸름함은 이내 '회감(回甘)'이라 불리는 달콤한 여운으로 바뀝니다. 쇠처럼 단단하게 뭉쳐있던 마음의 긴장이 찻잔 속에서 녹아내립니다. 이름은 비록 철(鐵)처럼 무겁지만, 그 차가 내게 주는 위로만큼은 솜털처럼 가볍고 따스합니다.
오늘처럼 마음이 흩어지는 날엔 철관음 한 잔이 제격입니다. 단단하게 자기를 지키면서도 주변을 향기로 채울 줄 아는 그 넉넉함을 배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관음운(觀音韻): 철관음 특유의 깊고 우아한 향과 뒷맛을 뜻합니다.
포구(抱球): 찻잎이 공처럼 둥글게 말려 있는 형태로, 우러나면서 잎이 펼쳐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청차(우롱차): 녹색의 신선함과 홍차의 풍미 사이, 그 절묘한 발효의 경계에 서 있는 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