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진 탕비실, 형광등이 명멸하며 내는 미세한 소음만이 정적을 메우고 있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찬장을 열어 그 익숙한 노란색 봉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이 시대 직장인들의 공용 화폐이자, 가장 저렴한 위로이며, 때로는 생존을 위한 혈청이기도 했다.
나는 봉지 끝부분의 'EASY CUT'이라 적힌 점선을 응시했다. 인류의 기술적 진보란 거창한 우주선 발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손가락 끝의 미미한 힘만으로도 매끄럽게 찢겨 나가는 이 비닐의 저항감이야말로 현대 문명이 도달한 지극히 사소하고도 위대한 배려였다.
종이컵 안으로 쏟아지는 가루들. 갈색의 고형 커피 입자와 하얀 설탕, 그리고 미색의 프리마가 층을 이루며 쌓인다. 그것은 마치 층적암처럼 우리네 고단한 노동의 시간을 켜켜이 쌓아올린 듯 보였다.
나는 전기포트의 스위치를 눌렀다. 물이 끓는 소리는 거칠고 급박했다. 마치 마감 시간에 쫓기는 내 심장 소리와 닮아 있었다. 뜨거운 물이 낙하하며 컵 안의 가루들을 집삼키자, 순식간에 달콤하고도 구수한, 다소 세속적인 향기가 피어올랐다.
"커피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워야 한다지만, 이 노란 봉지 앞에서는 그저 '프림 많이'가 진리인 법이다."
나는 다 쓴 커피 봉지를 집어 들어 젓가락 대신 사용했다. 환경 호르몬이 몸속을 유영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 따위는, 당장 뇌로 전달되어야 할 당분의 절박함에 비하면 사치에 불과했다.
첫 모금: 입술에 닿는 온도는 적당히 뜨겁고 무겁다. 혀끝을 스치는 설탕의 노골적인 단맛 뒤로, 프리마의 기름진 고소함이 미끈하게 감돌았다.
중반부: 커피 본연의 쌉쌀함은 그리 길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단맛의 단조로움을 깨기 위한 보조적인 장치일 뿐이다.
피날레: 목젖을 넘어가는 순간의 점성. 위장으로 내려간 액체는 차가웠던 속을 데우며 "자, 이제 다시 모니터 앞으로 돌아가"라고 등을 떠미는 환청을 들려주었다.
이것은 케냐 AA의 산미도,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의 꽃향기도 아니다. 하지만 이 컵 안에는 '적당함'이라는 가장 어려운 철학이 담겨 있다. 너무 고급스럽지 않아 부담 없고, 너무 저급하지 않아 비참하지 않은 딱 그 정도의 품격.
우리는 모두 이 노란 봉지 속의 가루들처럼, 서로 다른 성질을 가졌음에도 뜨거운 조직이라는 물속에 던져져 하나의 맛으로 섞여버린 존재들인지 모른다.
컵 바닥에 남은 설탕 알갱이 몇 개를 흔들어 마저 삼켰다. 입안에 남은 텁텁함이 오히려 개운하게 느껴지는 아이러니. 나는 빈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다시, 나의 전장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