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쉘위댄스'는 평범한 샐러리맨이 춤에 빠지는 과정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 주변의 다양한 인물들의 캐릭터가 빛나는, 그래서 작품의 감동이 더해진 그런 영화이다.
시계추처럼 직장과 집 사이를 오가는 샐러리맨, 무난한 승진 가도를 달려왔고 자기 집과 아내와 토끼 같은 딸까지 둔
그는 행복하고 남부러울 것 없지만 전철의 차창 너머로 무도 학원의 창가에 기대인 여선생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뭔가 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느낀다.
성동격서라고 그에게는 춤이 그 여선생에게 다가가기 위한 수단이지만 나중에는 그 여선생에게 머무르기 위한
구실이 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그는 독특한 승화를 경험한다. 그것은 마땅히 승화되어야 할 것이었다.
한편, 그의 주위에 모여든 춤을 배우는 학생들 모두가 춤을 배우게 된 이유가 다양하다.
세계적인 춤의 메카 블랙풀에서의 화려한 등극을 기대하고 그것이 좌절되어 우울에 빠진 여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죽은 남편에 대한 기억으로 춤을 추게 된 과부, 샐러리맨의 비애와 신체적인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직장과 춤 세계의 이중생활을 전전하는 주인공 스기야마의 직장 동료, 의사로부터 비만에 대한 치료로 춤을 권유받은 뚱보 남자, 주위 사람들에게 뽐내기 위해 몰래 스펙을 쌓으려는 경박한 중년 사내 등 이 영화가 화려한 춤세계가 아닌 실제 생활인들의 모습에서 캐릭터를 가져왔다는 점이 선풍 같은 댄스스포츠 열기를 불러온 열쇠가 되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 가운데서 나는 개인적으로 주인공의 직장 동료에게 적지 않은 흥미를 느낀다.
대머리이고 직장에서는 왕따이지만 춤세계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열정과 끼로 무장하는 이 블랙코미디 같은 사내.
그가 온 몸을 비틀며 룸바를 추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내다 못해 눈물겹고 사랑스럽다.
또한 스기야마의 콘테스트 파트너가 되어 무도복이 벗겨지는 수모를 당하는 과부도 나에게는 그 못지 않은 흥미를 자아낸다.
딸 하나를 기르며 힘든 생활을 하지만 춤을 통해 활력과 용기를 잃지 않으려는 그녀의 모습은 스기야마의 직장 동료 못지 않게 다소 과장되었지만 훌륭하게 스기야마 캐릭터를 보족하는 역할을 해낸다. 아니 그들의 역할은 단순히 주인공을
보족하는 역할이 아니라 주인공과 궤를 같이 하면서 춤이란 서민과 생활인들의 애환과 꿈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보편적인 정서로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라스트로 갈수록 여선생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동화되어가는 과정은 춤이란 예술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비록 프로선수들의 현란한 춤사위가 기예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춤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고 이 영화는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다.
나는 직접 춤을 접하기 전에는 춤을 추는 모습에서 전혀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꼭둑각시 놀음 같은 부자연스러움을 느껴 생경하게만 여겼었다. 그러나 지금은 춤을 아주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춤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이 영화와 같은 관점에서일 뿐이다. 결코 춤을 허영과 자기과시욕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의 대열에는 서고 싶지 않다. 차라리 스기야마의 직장 동료처럼 웃음거리가 될지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