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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출 때 나이 잊어라…'둥실덩실' '나빌레라'
이해원의 유용한 무용
시니어 무용 ‘둥실덩실’. /배태호 제공순수예술, 그중에서도 신체의 극한을 사용하는 무용(춤)은 오랫동안 젊고 정형화된 몸의 전유물로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최근 무대 예술계는 이 해묵은 편견에 가장 유쾌한 반론을 제기하는 중이다.
최근 서울예술단이 무대에 올린 뮤지컬 ‘나빌레라’와 리움미술관 로비에서 진행된 안은미 안무가의 시니어 무용 프로젝트 ‘둥실덩실’은 그 중심에 서 있다. 두 무대를 연달아 마주하며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인생의 황혼기에 비로소 자신의 꿈을 찾아 날아오른 이들의 몸짓은, 그 자체로 온전하게 아름답다는 사실이다.정형화된 극장 위에서 극적 감동을 전하는 ‘나빌레라’와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삶 자체를 예술로 끌어올린 ‘둥실덩실’은 나이 든 사람들의 잊혔던 꿈을 이뤄주는 무대이자, 감각과 신체의 민주화를 이루는 장이다. 두 작업은 노년의 몸을 단순한 노화의 대상이 아닌, 격동의 세월을 견뎌낸 ‘기록의 장소’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깊은 정서적 유대를 공유한다.뮤지컬 ‘나빌레라’.‘나빌레라’의 주인공 덕출은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꿈을 접어둔 우리 시대의 평범한 아버지를 대변한다. 일흔여섯이 되어 비로소 발레 슈즈를 신은 그의 뻣뻣한 몸은 그 자체로 고단했던 삶의 궤적이다. ‘둥실덩실’ 프로젝트에 참여한 70세 안팎의 시니어 여성 스무 명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몸에는 노동의 방식, 가부장적 관계의 구조, 실수하지 않고 버텨야 했던 지난 세월의 습관이 고스란히 중첩돼 있다.예술은 이들의 굽어진 등과 거친 손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둥실덩실’은 완성된 안무의 재현이 아닌 서로 다른 시간들이 충돌하며 생성되는 ‘날것의 몸짓’을 추구했으며, ‘나빌레라’는 늙은 노인의 발레 도전기를 통해 화려한 기교 너머의 ‘진정성’을 포착한다. 이들에게 무대는 과거의 억압과 고정관념에서 해방되는 구원의 공간인 셈이다.
두 작품이 깊은 울림을 주는 진짜 이유는 거창한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 무해함과 포용성에 있다. ‘둥실덩실’의 시니어 여성들은 “우리들의 몸을 너무 몰랐고 무례했다”며 “미안하다, 내 몸아!”를 외치고는 황진이부터 마리 앙투아네트까지 자신에게 영감을 준 드레스를 입고 미술관 로비를 종횡무진한다.이는 ‘나빌레라’의 덕출이 발레리노 청년 채록과의 교감을 통해 마침내 꿈의 날개를 펼치는 장면과도 닮아있다. “못하면 어때”라는 따뜻한 허용 속에서, 시니어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축제를 스스로 설계하는 당당한 주체로 변모한다.두 예술적 시도는 전문 무용수의 화려한 테크닉이 주는 압도감 대신, 평범한 개인의 몸 안에 숨겨진 흥과 꿈의 발화점을 건드린다. 그 덕분에 관객은 무대 위 노년의 몸짓을 보며 동정이나 연민 대신, 한 인간이 자신의 우주를 확장해 나가는 장엄한 드라마를 목격하게 된다.
‘나빌레라’의 발레와 ‘둥실덩실’의 막춤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결국 같다. 나이 듦은 쇠퇴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며, 예술은 그 어떤 장벽도 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은빛 머리 날림 속에 피어난 이 무해하고도 강력한 날갯짓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 우리 예술이 도달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종착지일지도 모른다.